<애프터스쿨> Afterschool
2008년 / 안토니오 캄포스 / 103분 2.35:1 아나모픽 / DD 2.0 영어 / 자막 없음 / 네트워크 릴리싱(영국) 화질 ★★★ 음질 ★★★ 부록 ★★★☆
교통사고가 났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겠다고 아주머니는 버스 창 이리저리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뒤에 앉은 중학생은 휴대폰을 꺼내 침착하게 동영상을 찍는다. 지금쯤 웹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 동영상엔 관심없다. 다만 녀석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궁금했다. 눈과 현실 사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청소년은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본다. 유튜브가 있고, 게임의 창이 있다. 프레임에 잡히지 않는 건 세상에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 프레임 안의 세상은 해석의 대상일까, 살아야 할 곳일까. 정작 현실은 살기 싫은 따분한 곳일까. 그들은 혹시 세상과 직접 대면하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상류층 아이들이 다니는 미국 동부의 사립학교. 내성적인 주인공 로버트는 동영상을 수집하는 게 유일한 취미다. 수업이 끝난 뒤엔 기숙사에 틀어박혀 동영상에 탐닉하던 소년은 귀여운 소녀 에이미와 가까워지고 싶어 비디오클럽 활동을 시작한다. 학교의 이모저모를 담다가 때론 서로에게 카메라를 비추던 어느 날, 무심코 텅 빈 복도와 계단을 찍던 로버트는 피를 토하는 두 소녀와 맞닥뜨린다. 학교의 유명 인사였던 쌍둥이 자매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로버트는 갑작스레 주목을 받게 되고, 학교쪽은 그에게 추모영상을 부탁한다. 하지만 건조하고 심심한 영상을 본 선생은 ‘최악의 영상’이라고 꾸짖으며 재작업을 요구한다. 그런 와중에 로버트가 왜 불안 증세를 드러내고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단편영화 <지금 구입해>에서 처녀성을 ‘이베이’에 내놓은 소녀를 그렸던 안토니오 캄포스는 청소년과 웹과 현실에 대해 다시 질문한다. 카메라는 교실과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법이 없지만, <애프터스쿨>은 하이틴장르에서 완전히 이탈한 작품이다. 하이틴무비의 정형적인 캐릭터는 하나도 없고, 말랑말랑한 음악은 꺼져버렸고, 섬세한 듯 무심하게 묘사된 아이들의 생활은 재밋거리에 미치지 못하고, 캄포스는 간혹 아마추어 비디오 모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짐 호버먼의 표현대로 <애프터스쿨>은 ‘호러 쇼’에 더 가깝다. 캄포스는 학교라는 공간의 폐쇄성을 놀랍도록 서늘한 분위기로 포착해놓았다. 그러나 캄포스는 학교 시스템에 대한 비판보다 한 아이의 은밀한 내면에 집중하기를 택한다. 이곳은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 <파라노이드 파크>, 그리고 미카엘 하네케의 <베니의 비디오> 사이에 위치한 불길한 세계다.
프레임 속의 영상은 스크린 위의 영화와 다르다. 그것은 감정적 반응을 동반하지 않는, 무심코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일 뿐이다. 보되 개입하진 않는 것이다. 카메라를 손에 쥔 뒤에도 로버트는 피사체를 피와 살이 붙은 진짜 세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소녀와 육체적인 관계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음에도 소년은 카메라 속의 그녀에겐 과감한 행동을 서슴지 않으며, 결국 모니터를 통해 말 못할 비극을 저지르고 만다. 비디오가 타인에게 노출되자 피사체로 나선 자신의 모습에 로버트는 심리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현실이 진실을 가리면서 소년은 다시 거짓과 불안과 평온이 섞인 세계로 침잠한다. <베니의 비디오>의 베니는 돼지의 도살장면을 반복해서 보다 그 느낌이 궁금해 소녀를 살해하고 비디오에 담는다. 로버트는 은폐된 베니의 얼굴이며, <애프터스쿨>은 유튜브 시대의 파라노이아이다.
칸영화제 공개시 상영시간이 120분을 넘었던 영화는 개봉되면서 많이 편집됐다. 대신 DVD는 50분이 넘는 삭제장면, 확장장면, 아웃테이크를 수록한 것으로 편집분을 보완했다. 그외에 휴대폰비디오(4분), 선생 장면 아웃테이크(26분), 예고편, 갤러리 등의 부록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