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러브 스토리> Capitalism: A Love Story
2009년 / 마이클 무어 / 127분 / 1.78:1 아나모픽 / DD 5.1 영어 / 한글 자막 / 아트서비스
< 화질 ★★★☆ 음질 ★★★☆ 부록 ★★★☆ >
혼탁한 시간에 더 멀리해야 할 인간은 악당보다 영웅 행세하며 나서는 것들이다. 촛불에 편승해 쓴소리 조금 뱉어본 청년 하나가 곧장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했다. 그걸 보고 다른 청년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원하는 자신도 그러면 좌파 아니겠냐고 물었다. 글쎄다, 내가 좌파라면 돼지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계급과 함께 잘 살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주의’를 앞세우는 것들은 상황이 조금이라도 바뀔라치면 언제나 배신의 깃발을 먼저 흔들었다. 그리고 그런 치들이 자본주의에 더 잘 적응하고 더 잘 사는 꼴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너무 교과서적이라고? 지금은 교과서의 엄숙함이 필요한 시간이다.
21세기의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딱 두 부류다. 자본주의를 지탱하거나, 자본주의를 견디거나. 전자가 자본주의를 너무 사랑해서 원군이 되었다면 후자는 자본주의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바란다. 양쪽 다 자본주의에 지긋한 사랑을 품고 있는 거다. 마이클 무어는 어느 쪽일까. 앞서 말한 청년들 눈에는 무어가 좌파의 선봉장으로 보이겠으나, 적어도 무어는 마술로 대중을 현혹하는 선동가 따위는 아니다.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의 무어는 좋은 자본주의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사람일 뿐이다.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의 도입부는 로마 제국이 불건전한 경제, 빈부의 격차, 사회의 불균형, 위정자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몰락했다고 알려준다. 어린 시절을 멋진 자본주의와 보냈다는 무어가 바라본 작금의 미국식 자본주의는 붕괴 전의 로마 제국과 다를 바 없다.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하에 기업처럼 운영되는 국가가 소수의 이윤 극대화만 낳았다고 주장하는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는 미국의 비참한 현실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미래의 문명이 미국을 어떻게 평가할지 우려한다. 멀쩡히 지내던 사람들이 은행 빚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 노숙자로 전락하고, 산업의 하부구조가 해체돼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허덕이고, 예고없이 해고된 노동자들은 졸지에 삶의 기반을 잃고, 기업식 교정시설이 청소년들의 소중한 시간을 강탈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각종 규제의 철폐와 구제금융 등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부유층의 천국이 완성되고 있는 거다. 무어가 진단한 미국은, 본질이 변해버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에 우선하는 사회, 소수의 부가 다수의 우위에 선 금권정치국가다.
무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연두교서로 언급한 ‘제2 권리선언’을 기억한다. 지금껏 ‘좋은 직업과 임금, 국민의료보험, 양호한 교육, 저렴한 집, 적정한 연금’ 가운데 어떤 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무어는 60년이 넘도록 루스벨트의 꿈을 묵살한 권력자에 전례없이 분노한다. 파이조각을 못 얻어먹은 사람이 항상 당하는 현실이, 부유한 자들이 모든 걸 뺏어가 가난한 자들을 방치한 탓 아니냐고 따진다. 무어에겐 미국 자체가 뜨거운 감자다. “이런 나라에서 살기를 거부하면서도 떠나지는 못하겠다”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무어는 자본주의에 대립되는 체제를 끝내 끌어당기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악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걸 대체할 무엇으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회’를 일컬을 따름이다. DVD 부록을 보면 그가 꿈꾸는 사회는 사회주의의 변형된 형태에 가까우나, 사슬이 퍼런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주의자 혹은 마르크스주의자로 커밍아웃하는 건 그리도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마이클 무어와 그의 영화는 갈수록 의로움을 더하고 있다. 영화의 말미에서 무어는 이제 힘겹다고 도와달라고 청한다. 돈을 달라는 게 아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한다면 그렇게 살아달라는 뜻이다. DVD 부록은 영화에 못다 수록한 10개의 특별영상(89분)으로 구성됐다. 각기 제목이 붙은 인터뷰 영상은 별도의 영화라 불러도 될 만큼 내용이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