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너무 철학돋네요.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뭉치를 건네줘서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빠져나오게 도와준 그리스 신화 속 공주 이름이 아니더이까. =네. 맞아요.
-이름이 좀 지나치게 직설적이지 않나 싶더군요. 꿈의 설계자에게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을 붙여주다니. 크리스토퍼 놀란도 참. 가끔은 놀랄 만큼 순진한 구석이 있단 말이죠. =그렇긴 하지만,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 중 몇 %나 아리아드네라는 이름과 그리스 신화를 연결시키겠어요. 반대로 생각하자면, 이름부터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에 오히려 평론가들이 그리스 신화를 매개로 분석을 하고 그러는 건 더 민망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이중의 트릭을 갖고 있는 놀란의 이름 짓기라고 할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여하튼 오늘은 아리아드네양을 좀 추궁할까 싶어서 이 자리에 불러냈습니다. 각오하세요. =각오했으니 추궁하세요.
-어젯밤 제 꿈을 설계하셨죠? 그렇죠? =전 기억이 없는데요. 대체 무슨 꿈을 꾸셨기에 그렇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십니까.
-어젯밤 꿈에 사무실에서 마감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바쁜 수요일 밤의 마감이었어요. 근데 갑자기 먼발치에서 충무로 거리가 반으로 확 접히더군요. 깜짝 놀란 제가 너무 놀란 나머지 편집장에게 달려가서 외쳤습니다. 마감이고 뭐고 큰일입니다, 편집장님. 세상이 반으로 접히고 있습니다. 그러자 편집장님의 얼굴이 갑자기 거대한 새앙쥐로 변하더니 이리 말씀하시더군요. 4대강을 경계로 동쪽은 파란나라, 서쪽은 노란나라로 분리하여 접었노라. =아 네. 진부하고 뻔한 정치적 비유 돋네요. 여튼 그래서?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여의도로 절을 올리고 싶고, 서울광장도 넓고 편하게 느껴지고, 키우는 고양이가 한없이 미워지더라고요. 이게 다 당신이 제 꿈에다 딴나라 바이러스 인셉션한 결과 아닌가요! =제가 뭔 영화를 보겠다고 그딴 걸 인셉션한답니까. 전 나름대로 격조있는 설계자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씨네21> 편집장님 부탁만으로도 바빠 죽겠습니다.
-뭐라고요? 편집장 부탁이라고요? =요즘 기자들 정신이 헤이해져 영 마감이 늦는다며 제게 특별히 인셉션을 부탁하셨죠.
-그… 그딴 게 가능할 리가. 아니 근데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오는걸…. 이건 편집장의 18번인 장윤정의 <올래>가 아닌가. 올래 올래. 튕기지 말고 내게 다가올래…. =이게 바로 기자님을 위한 ‘킥’입니다. 지금이 수요일 밤 마감처럼 느껴지시나요? 아니에요. 지금은 기자님 꿈속의 수요일 밤 마감일 뿐입니다. 깨어나면 진짜 수요일 밤 마감이 오겠지요. 그때는 꿈속에서 시간을 벌며 썼던 원고를 다시 끄집어내 쓰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 얼른 즐마감하세요, 기자님. 즐마가아암…. (아리아드네 저 멀리 사라지고 장윤정의 <올래> 들려온다. 올래 올래. 멋지게 후끈하게 다가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