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인간>
8월29일까지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출연 : 전병욱, 이화룡, 손희승, 김채린 │ 02-747-2070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그 추악한 사람들 중 하나는 아니겠죠?” “우리는 소비자를 위해 실험을 합니다. 당신들이 어떻게 호랑이를 조련하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요? 불에 달군 쇠로 호랑이 다리를 지진다는 거 알고 있어요.” “처음에만 그러는 거야. 당신네가 하는 실험과는 전혀 다른 거야.”
영문도 모른 채 유리 감옥에 갇힌 남녀는 보자마자 으르렁댄다. 격하게 싸울 땐 전기충격이 오고, 접촉하면 음식이 나오고, 매트리스도 선물(?)로 제공된다. 그러다 남녀는 깨닫는다. 자신들이 지구의 멸망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생명체이며 외계 생물에 의해 포획돼 사육되고 있다는 사실을. 남자인 라울(이화룡)은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는 과학자, 여자인 사만타(김채린)는 호랑이 조련사다. 남녀는 급기야 인류에 대한 모의재판을 벌인다. 무죄면 ‘교미’를 해 종족을 보존하고, 유죄면 따로 살다 죽기로 한 것이다.
연극 <인간>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2인극이다. 작가는 두 생명체를 통해 지구가 탄생한 뒤 지금까지 유지돼온 ‘인간 제일주의’를 뒤집는다. 그리고 동물의 입장이 되어 자유가 아닌 어떤 보상으로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무척이나 베르베르식이다. 베르베르는 인간을 과학적 시선으로 관찰하고 천착하는 것을 즐기는 작가다. <개미>에서는 작고 약한 존재가 인간을 바라보는 모습을, <타나토노트>에서는 거대한 존재의 시선을 다룬다. <인간>은 좀더 후자에 가까울 수도 있는데, 그보다는 훨씬 더 객관화된 시각으로 바라본다.
설정이 기발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립된 공간, 인간이 동물 취급당한다는 아이러니는 공상과학물에서 종종 사용되는 장치다. 대신 두 배우의 풍부한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유머가 배꼽을 잡는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 자막과 기계어로 외계 생물의 대화가 들려온다. 흡사 인간들이 개나 고양이 앞에서 수다떠는 모습을 연상시킨다(자막이 너무 빨리 지나가 외계인의 대화를 해석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웃기면서도 끔찍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원작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야 한다는 부담은 버렸어도 좋았겠지만, 베르베르의 책 한권을 100분 만에 읽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