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프로그램을 두고 흔히 코미디언이나 개그맨 개인의 능력이나 명성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고 한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방송 프로그램 중 스타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게 무엇이 있을까 싶지만, 코미디는 유난히 연기자의 이름값에 크게 좌지우지한다. 지명도 높은 스타에 뛰어난 연기력이나 성대모사, 애드리브를 갖춘 기대주까지 3∼4명 확보하면 그 프로그램의 성공은 80% 이상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데는 ‘+α’의 요소가 하나 더 필요하다. 지난 가을 개편부터 새로 등장한 SBS의 <오! 해피데이>란 코미디 프로그램이 있다. 한동안 방송을 떠났던 이봉원을 비롯해 홍록기, 이창명 등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은 전형적인 ‘라이브 코미디’이다. 관객과의 친밀한 교감과 자유분방한 형식이 특징인 ‘라이브 코미디’는 일부 개그맨들이 대학축제 때 시도했던 것을 소극장 무대에 도입하면서 알려졌다. 일반 시청자에게는 99년 여름 KBS 2TV <개그 콘서트>가 등장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무대의상이나 세트에 연연하지 않고 빠른 상황전개로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이 형식은 천편일률적인 틀에 맞춰 진행되던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에 식상했던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오! 해피데이>는 그런 시청자의 기호를 겨냥해 기획됐다. 외형상 <오! 해피데이>는 ‘라이브 코미디’의 방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편한 자세로 무대에 나온 개그맨들이 그때그때 설정된 주제에 맞춰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와 연기력을 펼치는 것은 ‘라이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만 접할 수 있는 모습이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길어야 2분 안팎의 짧은 시간에 펼쳐지며 촌철살인의 웃음을 유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막상 프로그램 안을 들여다보면 외형이 주는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뀐다. 무엇보다 <오! 해피데이>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부분은 ‘그들만의 웃음’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이봉원에서 방송에서 처음 접하는 새얼굴에 이르기까지 신구 세대를 고르게 갖추고 있지만, 50여분 동안의 방송 내내 스튜디오 안의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함께 공감하며 웃을 만한 순간이 별로 없다. 정작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박장대소하며 웃는 사람은 무대 위의 연기자이다. 동료의 연기를 보면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추임새를 넣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객이 함께할 때이다 . 보는 이들이 ‘저게 뭐야’라는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자기들끼리만 웃고 박수를 친다면 보는 사람들은 일종의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들만의 웃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그맨들이 준비한 각각의 꼭지들이 일정한 흐름이나 연결고리 없이 산만하게 펼쳐지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별적인 코너의 배치와 호흡 조절은 의외로 중요하다. 같은 아이디어로 구성된 코너라고 해도 어떻게 배열하느냐, 중간중간 쉴 부분과 강하게 관객을 몰고갈 부분이 어디인지를 염두에 두고 흐름을 맞추는 것에 따라 웃음의 강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축구나 농구가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다양한 조합으로 엮는 데 따라 전술이 나오듯, 코미디에서도 시간대와 목표 시청자의 성향에 맞춘 ‘웃음 포메이션’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오! 해피데이>에서는 그저 개그맨 개개인의 개인 플레이만 눈에 띌 뿐이다.
얼핏 자유롭고 무형식을 띠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라이브 코미디’처럼 사전에 철저하게 흐름을 연습하는 코미디도 드물다. 마치 축구선수가 개인전술과 부분전술 습득에 이어 팀전술을 익히고 이를 시뮬레이션 경기를 통해 몸에 체득하듯, ‘라이브 코미디’의 연기자들도 자신의 코너 외에 전체적인 프로그램 흐름에 대한 연습을 한다. 얼핏 자연스럽게 발생한 상황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연습과 계산이 깔려 있다. 한때 큰 인기를 모았던 <개그 콘서트>의 ‘앵콜 개그’는 사전의 치밀한 연습을 거쳐 미리 준비한 인위적인 ‘즉흥 코너’였다.
그런데 <오! 해피데이>에서 보는 애드리브는 이러한 사전준비 없는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때가 많다. 의도했던 웃음이 원하는 타이밍에 터지지 않을 때의 무안함을 모면하기 위한 과장된 행동이나 대사는 그뒤에 오는 다른 코너나 연기자들과의 조화를 깨뜨린다. 이러한 무질서는 특히 아직 방송에서 순간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신인들이 나올 때 더 심해진다. 선배들의 애드리브로 흔들린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애를 쓰는 신인들의 모습은 어떤 때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이 한데 얽히면서 출발 당시 많은 기대를 모았던 <오! 해피데이>가 주말 프로그램 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10%을 한참 밑도는 부진을 보이고 있다. <오! 해피데이>의 좌초는 코미디의 성공에 있어 개개인의 능력 못지않게 그들을 유기적으로 엮어줄 수 있는 전략이 부재할 경우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김재범/ 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