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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스런 유머로 성공한 콘돔 광고들
2001-12-20

민망하다구? 천만에!

당신은 얼마나 뻔뻔스러운 사람인가? 여러 가지 테스트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이럴 수도 있을 것이다. 예쁘장한 약사 아가씨가 서 있는 약국의 카운터가 실험장소로는 딱이다. 목표지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콘돔 한 상자만 주슈”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의 ‘뻔뻔지수’는 합격점이다. 그렇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이 예민한 물건 앞에서 쭈뼛거리기 일쑤다. 창 너머로 카운터 안쪽에 누가 서 있는가 관찰하면서 몇개의 약국을 스쳐 지나간 끝에 겨우 용기를 내서 그런 말을 간신히 내뱉을 수 있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런 당신을 두고 소심하다거나 내숭이라고 비아냥거릴 사람은 별로 없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 성인남자의 60% 이상이 그런 구매행태를 나타낸다고 되어 있다.

콘돔은 이처럼 일상생활에서는 낯뜨거운 물건이지만 창작 광고제에서는 꽤 인기있는 소재로 자주 거래된다. 10년도 더 된 걸로 기억된다. 일본의 유명한 광고제에서는 이런 광고가 상을 받았다. 순진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약국 창문을 계속 두리번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창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러나 빤히 쳐다보는 여자 약사 앞에서 입이 얼어붙어버리는 소년. 한참을 홍당무처럼 서 있다가 마음에도 없는 물건을 턱으로 가리켜버린다. 엉뚱한 약을 사들고 나오다가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약사 아가씨가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콘돔 상자를 건넨다는 내용이다. 짧은 CF였지만 긴장, 갈등, 조롱, 반전의 유머, 내면심리 묘사가 다 담겨 있는 작품이었다.

이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담은 CF는 프랑스의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전개된다. 깐깐하게 생긴 교사가 포장지가 뜯긴 콘돔을 하나 주워서 수업을 받기 위해 모여 있던 학생들 앞에 나타난다. 마치 범인을 추적하듯이 주인이 누구냐고 질문을 던진다. 수런대는 학생들, 그리곤 주위를 살피는 시선들. 잠시 뒤 일어난 일은 예상을 깬다. 한 학생이 용감하게 일어서서 자백을 한다. 그때 또다른 학생이 일어서서 사실은 자기가 한 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일은 거기서 마무리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 “저요”하면서 일어서는 학생들. 마침내 모든 학생이 일어서서 서로 주인이라고 우긴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생님을 배경으로 자막이 뜬다. 콘돔을 쓰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말하는 공익광고였다.

우리가 콘돔이라는 녀석 앞에서 용감하지 못한 이유는 꼭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다. 불편과 불안, 불신도 한몫한다. ‘기분을 잡친다’, ‘왠지 감이 안 온다’, ‘이질감이 느껴진다’ 등등의 불만을 늘어놓으면서 사용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말끔하고 깔끔하게 해결하는 CF가 눈길을 끈다. 묘한 분위기의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화면을 꽉 채우며 날아들어오는 콘돔 하나. 그것을 손으로 잡아 자연스럽게 포장지를 찢고 손가락에 콘돔을 끼우는 모습. 왜 저러나 싶은 순간, 마치 비닐장갑을 끼듯 콘돔을 낀 손가락은 천연스럽게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는다. 우리가 주민등록증에 지문을 찍을 때처럼 종이에는 선명하게 지문이 찍힌다. 무슨 얘긴가 의아할 사이도 없이 자막이 궁금증을 해결한다. “Manix 002. 아주 미세한 느낌”. 고전적인 표현수법으로 밀쳐놓았던 데몬스트레이션이 섬뜩할 정도의 브랜드 각인효과를 발휘하는 대목이다(광고1).

윤리나 도덕, 계몽 따위의 뻔한 목적의식을 벗겨내면 여느 상품 못지않게 깜찍한 크리에이티브가 나온다. 인쇄광고 몇편을 보자. 안전이라는 컨셉을 이보다 더 앙증맞게 표현할 수 있을까? 콘돔의 모양새와 네모난 포장지 모양이 한데 어울려 영락없는 자물쇠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안전한 제품이라는 카피가 오히려 군더더기로 여겨진다. 언뜻 보면 스티로폼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콘돔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는 광고. 깨지기 쉬운 물건을 감싸듯이 하나하나 애지중지 모셔져 있는 콘돔이 예뻐보이기까지 한다. 제품이 가지고 있는 민망한 뉘앙스를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한 유머와 재치있는 아트워크가 경탄스럽다(광고2).

유머는 때로는 과격하기까지 하다. 어떤 면에서는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금기의 영역으로 얼굴을 붉혀왔던 얘깃거리까지 입에 담길 서슴지 않는다. 돈 후안 같은 무지막지한 껄떡쇠를 위한 특수콘돔 광고 시리즈. 아무리 괴력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기관차, 드릴, 스쿠버 다이버, 황소 같은데다가 남성의 거시기를 비유하다니. 해도 해도 너무했지 않은가 싶다. <변강쇠>나 <> 시리즈를 보면서 배꼽을 잡았던 저 골때리는 명장면(?)들이 절로 떠오른다. 때로는 이렇게 무식하게 웃겨야 기억의 창고 속에 브랜드를 남길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현우/ 광고칼럼니스트 hyuncom@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