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배우>라는 공포물 시나리오를 작업한 지 넉달이 되었다. 인사동 구석에 위치한 작업실에 들어온 지도 이젠 두달이 되어간다. 사실 5월 말에 <아역배우>의 초고는 완성했다. 하지만 대부분(아마도… 천재작가라 불리는 양반들의 초고를 제외하곤) 세상의 모든 초고는 태어나자마자 ‘존재 자체만 증명하는’ 정도의 위치밖에 안된다. 그 다음엔 본격적으로 초고와 각색 사이에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된다. 최악의 경우 같은 작가가 만들었지만, 동생뻘인 각색이란 놈이 형님뻘인 초고의 존재 자체를 따지고 드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가 왜 이렇게 각색되어야 하지?’… ‘초고가 이 모양이니, 어쩔 수 없잖아 넌 얼마나 많이 변해야 하는지 아니?’ 뭐 이런 식으로…. 그 전투에서 지면 대본은 초고만으론 사장된다. 초고에 만족한 영화투자자가 백마 탄 왕자님마냥 ‘내가 널 구해줄게!’ 하며 나타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결국 <아역배우>는 마감을 세번 연거푸 어긴 상황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마감을 어긴 날에는 평소에 오지도 않던 전화들이 뭐 그렇게 많이 오고, 잘 읽지도 않던 철학책이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갑자기 ‘조금은 색다른 다른 변명’이 필요해진다. 지나치게 거창해서도, 새로워서도, 자극적이어도 안되는… 적당한 선에서 조금은 다른 변명. 마치, 지금 <아역배우> 각색 방향에 딱 어울리는 말인 그 ‘적당한 선’처럼….
첫 번째 마감을 어긴 날엔 감정적 호소를 했다. 차후에 절대 남기고 싶지 않을 정도로 구차한…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등…. 두 번째 마감을 어긴 날에는 군대 간 막내동생의 면회를 가서, 삼척시에 가야 한다는 별로 그럴싸하진 않지만, 뭐 그런 변명이 생겼다. 그땐 쿨한 문자도 보냈다. 대본이 안 풀려서 바다도 보고 마음 정화도 하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세 번째 마감을 어긴 날엔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는 식이었다. 단지, 내가 놀아서 늦어진 건 아니라는 것은 좀더 강조했다.
그렇게, 나는 구차하게 <아역배우>를 쓰고 있다. 결국 마감은 올 것이고 더 큰 산도 넘는다면 2011년 여름에 <아역배우>가 극장에 걸릴 테고, 그럼… 구차했던 1년 전 인사동의 여름을 회상하며, ‘그래도 잘 넘겨서 다행이었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날의 변명들이 초라해지지 않으려면 꼭 산을 넘어야겠다(물론, 마감부터 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