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영화는 현실과 몽상의 중간에 있다고 할까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몽상하는 버릇이 있었죠. 몽상하면서 영화를 끝까지 만들 겁니다."
벨기에 출신의 자코 반 도마엘(53)은 1990년대를 풍미한 영화감독이다.
1991년 '토토의 천국'으로 장편 데뷔한 그는 이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세자르영화제에서는 최우수외국어상을 받았다.
5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영화는 '제8요일'(1996). 다운증후군 동생과 정상인 형의 형제애를 다룬 영화로, 지금은 유명해진 파스켈 뒤켄이 다운증후군 환자로 나와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작품이다.
도마엘 감독이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그가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들고 온 영화는 '미스터 노바디'(2009).
3명의 자녀를 둔 네모 노바디는 어느 날 120살 먹은 노인이 돼 눈을 뜬다. 잠에서 깨자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른 노바디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조용히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도마엘 감독은 18일 부천의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토토의 천국'이 50대 때 만들었어야 하는 영화라면 '미스터 노바디'는 오히려 20대 때 만들었어야 할 영화"라며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실험적인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판타지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야기가 하나로 모이는 일반 영화와는 달리 부챗살처럼 여러 개로 퍼져 나가는 독특한 작품이다. 로맨스, SF 등 장르를 타고 넘는 솜씨도 뛰어나다.
"저는 한 가지 일에만 병적으로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8요일' 이후 이 영화를 만드는 일에만 지난 10여년 간 몰두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금세 6년이 지나갔다. 촬영과 편집, 음향 등 후반작업도 오래 걸렸다.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가 아닌 새로운 시도를 하다보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벨기에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후 곧장 영화계로 들어갔다. 어렸을 적부터 상상하는 일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영화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왜 영화를 선택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수천 가지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었겠죠. '왜 인생이 이런 쪽으로 흘러가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미스터 노바디'에 투영된 것 같습니다."
'토토의 천국'부터 '미스터 노바디'까지 도마엘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특징은 판타지적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인물들이 하늘을 훨훨 날거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도마엘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는 일 자체가 판타지"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과연 현실에서 리얼리티를 포착하는게 가능할까요. 저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남들에게도 리얼하게 다가올까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건 불가능해요. 꿈을 표현하는 게 오히려 리얼리티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30여년간 영화를 하게 된 동력을 묻자 "영화는 청각, 시각 등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장르"라며 "특히 카메라가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이동할 때, 우리의 마음도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한국 영화에 대한 지식은 깊지 않은 듯했다. 주로 독립 영화 계통을 본 것 같다는 그는 "한국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개봉관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아 DVD 등을 통해 간헐적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최근 5-6년간 유럽에서 일본 영화보다는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buff27@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