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 맥켄지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비운의 이름이다. 쉰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단 몇편의 영화를 남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지금에 와서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한 <유배된 사람들>의 기이한 운명처럼 맥켄지는 어느 날 갑자기 평단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됐다. 1961년, 베니스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얻었으나 배급사를 찾지 못한 <유배된 사람들>은 이후 스크린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 유령을 세상으로 불러낸 건 톰 앤더슨의 걸작 필름에세이 <LA 자화상>(2003)이다. 앤더슨이 ‘사라진 도시의 본모습을 간직한 경이로운 기록’으로 소개한 <유배된 사람들>은 관심을 불러모았고, UCLA 필름 & TV 아카이브는 열악한 프린트의 복원 작업을 진행했으며, 마일스톤 필름이 배급을 맡아 관객과 영화가 만날 기회를 제공했다. 복원된 필름이 2008년 베를린영화제에 공개되자 평단은 존 카사베츠, 셜리 클라크, 모리스 엥겔 등의 이름 뒤로 맥켄지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맥켄지는 훗날 찰스 버넷이 이끈 독립영화운동의 멸실환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유배된 사람들>은 보호구역에서 로스앤젤레스의 벙커힐 지역으로 흘러들어온 일군의 아메리칸 인디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현실의 변화를 바라는 이본과 달리 남편 호머는 매일 친구들과 흥청거리기에 바쁘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들은 도심 한편에 그녀를 내려주고 떠났고, 그녀는 혼자 심야영화를 보고, 거리를 배회하고, 같은 처지의 친구를 찾아 마음을 달랜다. 밤이 새벽을 만나기까지 12시간에 걸쳐, 호머는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싸움을 벌이고, 떠나온 공동체문화의 향수에 젖는다. 애초에 맥켄지는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사회적이고 인류학적인 접근을 의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조사와 교류를 거치면서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뒤따르기로 결정했고, 3년의 제작기간 동안 감독과 배우들은 서로 교감하며 한편의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에드워드 S. 커티스가 찍은 옛 아메리칸 원주민의 사진이 나온다(영화제 관객의 요청에 따라 맥켄지가 별도 삽입한 것이다). 커티스의 사진이 위대한 과거를 기억하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표정을 명료하게 담았듯, 맥켄지는 자신의 의도를 내던지는 대신 유배당한 인물들의 진실과 대면하기로 했던 거다. <유배된 사람들>은 악보 없이 진행되는 즉흥연주처럼 보이지만 목적지 없이 흘러가던 여정이 끝날 즈음 보편적인 주제를 맺는다. 자연스레 포착된 도시의 어지러운 풍경 속에서, 인물들은 날것의 표정으로 꿈을 잃어버린 자의 슬픔을 연기하며(세 주인공의 나지막하고 담담한 내레이션은 압권이다), 우리는 제작기 다른 욕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자화상이 엇갈리고 충돌하는 생생한 현장을 바라본다. USC의 영화학도로서 로버트 플래허티와 험프리 제닝스의 다큐드라마에 이끌린 맥켄지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결합을 부단히 탐구했는데, <유배된 사람들>은 그 결과물에 해당한다. 공간과 인간에 이토록 정성을 다해 거짓없이 접근한 영화는 찾기 힘들 것이다.
DVD의 방대한 규모와 짜임새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본편에는 셔먼 알렉시, 숀 액스메이커의 음성해설이 지원되고, 부록으로, 맥켄지의 단편영화 4편(<벙커힐, 1956>(17분), <몰리나의 기술>(15분), <로데오 카우보이 이야기>(25분), <아이반과 아버지>(13분)), <LA 자화상>의 발췌본(3분), 벙커힐의 변천을 다룬 단편영화 2편(<앤젤 플라이트 전차의 마지막 날들>(로버트 커스티, 3분), <벙커힐: 멸실의 이야기>(그렉 킴블, 23분)), 최초의 아메리칸 인디언 감독인 제임스 영디어의 단편영화 <흰사슴 여인의 헌신>(1910, 12분), 2시간여의 오디오 자료 등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