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쓰릴 미>
11월14일까지 신촌 더 스테이지 02-744-4011
남자배우의 재발견, 스타 관문, 실화, 나, 그, 소극장, 그리고 동성애. 4년 연속 무대에 오르고 있는 뮤지컬 <쓰릴 미>를 설명하는 키워드들이다. 그러나 이제 ‘나’와 ‘그’의 관계를 사랑, 흔히 말하는 동성애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무대보다 위에 설치된 피아노의 연주가 시작되면 무대를 둘러싼 창에 조명이 스며든다. 그때 ‘나’가 등장한다. 34년 동안 수감되어 있던 ‘나’는 가석방심의위원회에서 ‘그’와의 관계를 고백하며 회고한다. 특별한 무대 전환은 없다. ‘나’의 목소리 톤과 옷매무새를 추스르는 몸짓, 조명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구분할 정도. 극은 가석방 심사대 위에서 34년의 시간을 교차하며 흐른다. 항상 ‘그’를 그리워하던 ‘나’ 앞에 어느 날 ‘그’가 나타난다. 어린 시절 불장난으로 시작했던 ‘나’와 ‘그’의 범죄행각은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는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나’는 왜 살인사건에 가담했는가? 극이 흐르면서 의문은 계속된다. ‘그’와 ‘나’의 파워게임, 두 캐릭터 사이에 감춰진 진실, ‘피의 계약’의 숨은 의도와 정서는 이 작품에서 풀어야 할 퍼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쓰릴 미>의 전부는 아니다.
둘이지만 하나인 ‘그’와 ‘나’.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마치 거울처럼 서로의 상처와 욕망의 기원을 보여준다. 풍족하지만 정서적으로는 공허하며 상대적으로 자기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는 현대의 젊은 세대와 중복된다. ‘그’가 심취해 있는 니체의 초인론이 갖는 대중적인 상징성과 다르지 않다. 절정에 이르러 감춰졌던 ‘그’와 ‘나’의 진실이 폭로되면서 집착과 욕망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허무다.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스라이 사라지고 마는 속절없는 인생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허무 말이다.
이 작품엔 심의관과 유괴한 아이도 등장한다. 심의관은 목소리로, 아이는 조명으로 발자국 모형만 보인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등지고 ‘그’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이 차는 안전해>를 노래하면서 아이를 유혹한다. 한 박자 먼저 들리는 피아노 소리와 두 배우가 뿜어내는 매력은 다소 단순하게 그려진 캐릭터와 촌스러운 의상마저 쉽게 지워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