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인간 박희순이 도전이나 모험을 즐기지 않는다면 배우 박희순은 즐깁니다. 한국에서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고 싶고, 또 욕심도 납니다."
영화 '맨발의 꿈'에서 주인공 원광으로 분한 배우 박희순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희순에게는 '오지 배우'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남극일기'(2005)를 찍을 때는 뉴질랜드의 오지에서 추위와, '10억'(2009)을 찍을 때는 호주의 무더위와 씨름했다. 동티모르를 배경으로 한 '맨발의 꿈'(2010)도 고생의 연속이었다. 이번에는 육체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정신적인 불안감도 컸다고 한다. 불안한 치안 탓이다.
"내전 때 회수되지 않은 3천 발의 실탄이 민가에 있다고 해요. 까닥 잘못하면 총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인 거죠. 게다가 촬영지에 가면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자릿세를 내라고 강요하는 폭력배도 있었고요. 가는 곳마다 웃으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웃음)
'화산고'의 김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맨발의 꿈'은 2004년 리베리노컵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동티모르팀을 소재로 한 축구영화다. 박희순은 아이들을 이끌고 우승을 견인하는 감독 원광 역을 맡았다.
"잘 알지 못하는 동티모르에서 그곳 아이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게 신선했습니다. 해외 로케이션을 한 영화들은 많지만, 현지인과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맞추는 경우는 거의 최초라고 봐도 무방한 것 같아요. 제가 도전을 좀 즐깁니다." (웃음)
영화에서 박희순은 동티모르어와 한국어를 적절히 살린 구성진 말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2달간 인도네시아어와 현지 동티모르말인 떼뚬어, 영어 등을 배우며 차분하게 촬영을 준비했다고 한다.
"사투리도 공부하고 연기하는데 남의 나라 말을 공부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죠. 비록 감독님이 유창하게 말을 하면 오히려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만, 공부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빵' 터지는 장면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영어, 떼뚬어, 포르투갈어 등이 뒤섞인 원광의 대사는 압권이다. 이는 전적으로 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여러 나라의 재밌는 단어들을 뽑아서 조합했어요. 이렇게 해도 되느냐고 인도네시아어 선생님에게 여쭤봤는데, 엄청나게 웃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자신 있게 애드리브를 했죠."
그는 최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도 다녀왔다. '맨발의 꿈'이 유엔에서 상영돼 초청인사에 포함되면서다. 한국 상업영화가 유엔에서 상영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희순은 "해외영화제에서 국위를 선양하는 것도 큰일이겠지만 유엔에서 상영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며 "배우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눈물이 글썽거리는 얼굴로 다가와 '고맙다'는 말을 해주는 분들도 있었어요.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박희순은 지난 2002년 '보스상륙작전'으로 영화에 입문했다. 그전까지는 이른바 잘 나가는 연극배우였다.
"오태석 선생님에게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말하고 나서 영화계에서만 일한 지 벌써 8년째네요. 제대로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요."(웃음)
연극은 고향 같은 곳이라며 언젠가는 돌아갈 생각이 있다는 박희순. 지금은 그저 영화에 충실하고 싶단다.
"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즐기는데 영화는 매번 감독과 배우가 바뀌니까 작품마다 새로운 것 같아요. 이렇게 재밌고, 흥미로운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복이죠."
주로 조연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던 그는 최근 주연으로도 맹활약하고 있다. '맨발의 꿈'에서 주연자리를 꿰차더니 최근 촬영을 마친 '혈투'(박훈정 감독)에서도 주연을 차지했다. 그가 느끼는 주연과 조연의 차이는 무얼까.
"조연할 때도 제가 주연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주연을 해도 다른 배우들과 더불어 영화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원톱 주연은 모든 손님을 맞이하는 집주인이라는 개념입니다. 아랫사람을 부리는 집주인의 개념은 아닙니다."
지난 20년간 연기에 몰두한 박희순. 그는 여전히 보여줄 모습이 많다며 의지를 다진다.
"'박희순의 재발견'이라는 말을 처음에는 달갑게 생각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아직도 보여줄 게 있다는 말이잖아요. 저에게는 좋은 말이죠. 연극에서 했던 저의 장기들을 아직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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