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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순진과 냉소 사이 [1]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뿐,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 <방자전>의 한계

<방자전>의 흥행을 둘러싸고 시나리오의 힘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감독이 데뷔전까지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했던 이력이 주는 신뢰, 그리고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춘향전>의 색다른 변주가 주는 감흥 때문일 것이다. 감독이 몇몇 인터뷰에서 한 말 중 가장 귀담아들을 내용 또한 유사하다. 그는 이야기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을 “내가 감독으로서 다른 감독과 비교할 때 그나마 가산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운용일 것이란 강박관념이 있다. 그러다보니 내가 쓴 이야기에 의지하면서 이야기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성질이 인물에게 투영된 것 같다”(<씨네21>, 756호)고 표현했다. 그리고<춘향전>을 택한 이유에 대해 “원작의 순진한 결말을 비틀어보고 싶었다. 양반 자제 이몽룡과 기생 딸 춘향이 맺어지는 결말은 민초들 입맛에 맞게 가공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분이 다른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춘향전> 같은 좋은 ‘파일럿’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중앙일보>, 6월10일)고 답한다.

원작의 맥락에 너무 기댔군

나 역시 <방자전>이 <춘향전>과 관련해서든, 그 자체로든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즉 메타 이야기의 작동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영화라는 데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방자전>이 이야기에 관심을 둔 영화라고 해서, 이야기를 잘 조직한 영화라는 결론으로 성급히 건너뛰면 안될 것이다. 원작이 어떤 관점에서 변주되었는지만큼 중요한 건 현재 시점에서 그것의 변주가, 혹은 원작의 다른 반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의 문제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건, 그렇게 재창조된 작품이 원작과 관계없이도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로 이해되는지의 여부다. 그런 의미에서 <방자전>은 어느 쪽으로도 성긴 느낌이다. 감독이 말한 “이야기의 운용”에 대해서라면, 이야기를 끝까지 붙잡지 않고 너무 쉽게 넘어가거나 맥을 놓아버리는 것 같고, <춘향전>의 변주와 관련해서라면 원작을 충분히 넘어서지도, 그렇다고 충분히 감싸안지도 않은 것 같다.

우선 이 영화가 재미있다는 견해들이 과연 이 영화가 이야기를 운용하는 방식에 대한 반응인지 의심스럽다. 내 생각에 그건 이야기의 맥락보다는 이 영화가 캐릭터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방식에 기인한다. <방자전>에 대한 언급들이 주인공들보다 조연들, 특히 마노인(오달수)과 변학도(송새벽)에게 맞춰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들이 이야기적 맥락 안에서 맡은 역할보다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는 건, 배우와 캐릭터의 이상한, 그러나 더없이 적절한 조합에서 오는 코믹함, 그리고 그걸 상승시키는 성적인 농담이다. 확실히 웃기기는 한데, 이 농담들은 이야기와 붙는 느낌이 적고, 뭔가 다른 목적, 이를테면 그저 우스운 순간을 위해 거기 있다는 인상을 준다. 특정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가 영화의 긍정적인 요소일 때도 분명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영화적 재미와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뒤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이 영화는 결국 <춘향전>의 탄생비화가 실은 <방자전>에 있다고 말하는 셈인데, 감독이 영화를 구상한 순서는 그와 반대다. 즉 <춘향전>이 먼저 있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방자전>이 탄생했다. 그건 당연한 순서이고, 뭐가 중요하냐는 반문이 있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두 순서의 불일치가 <방자전>의 영화적 헐거움을 낳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김대우가 <방자전>의 스토리를 진행시킬 때, (그가 <춘향전>의 영향을 이미 받은 상태라는 사실과 별개로) 이야기는 영점에서 토대를 구축해야 하고 인물들의 행위, 마음, 선택 등은 그 토대 안에서 그 자체로 설득력을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방자전>은 이미 시작부터 스스로 <춘향전>의 자장 안에 존재한다는 의식과 결국은 <춘향전>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욕망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 것 같다. 달리 말해, <방자전>은 <춘향전>이 태어날 계기가 될 사건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사건은 여전히 <춘향전>의 영향력 안에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원작이 전제되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 자체로 흠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지만, 영화가 그 과정을 너무 쉽게 여기지 않았나 싶다. 요컨대 영화가 원작의 무엇을 취하고 버릴 것인지의 기준을 충분히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혹은 원작을 안을지 말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 것 같고, 그 결과 스스로의 힘으로 상황과 토대, 캐릭터를 설명해야 할 어떤 지점들에 대해서 이미 존재하는 <춘향전>의 맥락에 기대는데, 그때 ‘이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 거야’라는 태도로 지나가버리는 건 문제다.

몽룡이 서울에서 돌아온 다음에 주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자전>의 이야기 작동방식을 살펴봐야 한다면, 그건 영화의 후반부, 몽룡이 서울에서 돌아온 뒤부터다. 나는 이 영화가 두개의 이야기, 혹은 두 사람의 이야기로 구성된다고 본다. 하나는 이 영화의 메인 서사, 즉 방자가 과거의 기억을 구술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장원급제하고 돌아온 이몽룡이 만들어낸 미담이다. 일단 방자의 큰 이야기 안에 이몽룡의 미담이 들어 있는 모양새인데, 이 둘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하나가 다른 하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보는 게 중요하다. 좀 장황하지만 후반의 내용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장원급제하고 귀향한 이몽룡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만의 개성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실천하기 위해, 미담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에 춘향은 공모한다. 그러니까 몽룡의 미담은 몽룡 자신과 춘향 모두에게 신분상승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단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암행어사 출두, 변학도에 대한 춘향의 수절과 관련된 이야기다. 방자는 춘향의 귀띔으로 이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지만, 몽룡-춘향의 계획된 미담에 끼어들어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고초를 겪는다. 방자는 자기 행동의 이유를 춘향에 대한 사랑으로 설명한다. 방자의 진심에 마음이 움직인 춘향은 몽룡에게 방자를 데려가지 않으면 이 미담이 거짓임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고 셋의 이상한 동행이 시작된다. 하지만 몽룡은 방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춘향을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방자는 춘향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 이것이 방자가 소설가에게 구술한 내용이다. 다시 방자의 현재로 돌아온 영화는 그가 사고로 아이의 지능을 갖게 된 춘향과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방자는 정작 자신이 읽고 싶은 소설은 이런 내용이 아니라, 춘향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몽룡과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며, 그걸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 소설의 제목이 ‘춘향전’이며, 방자의 이야기는 결국 춘향에 대한 사랑이다, 라는 게 <방자전>의 결론이다.

여기서 춘향에 대한 방자의 사랑이 자기보다 상류층인 몽룡에 대한 경쟁심과 확연히 구별될 수 있냐고 반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방자의 ‘춘향전’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영화의 결론에 자리잡게 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우선 몽룡과 춘향의 미담에 대한 욕망(바꿔 말하면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이 결국 방자의 이야기를 추동한 근원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몽룡-춘향의 미담이 성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자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며, 그 실패를 봉합하기 위해 방자가 떠올린 이야기가 ‘춘향전’이다. 그렇다면 <방자전>은 ‘춘향전’에 대한 해체인가? 방자의 몽룡에 대한 승리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몽룡과 춘향의 절절한 사랑이 실은 방자가 지어낸, 춘향을 위한 환상이라는 사실이 전복적인가? 던져보고 싶은 질문이긴 한데, 그렇다, 고 대답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몽룡-춘향의 계획된 미담에서 한쪽만 성공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몽룡의 미담을 실패시키고 방자의 이야기가 완성된 게 아니라, 춘향의 미담이 실패한 지점에서 방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을 구별해야 한다. 춘향을 절벽 밑으로 밀어버린 몽룡은 이후 영화에서 자취를 감추지만, 그는 아마도 더 자극적이고 감상적인 미담의 계기를 얻었을 게 분명하다. 방자의 이야기는 결국 몽룡의 미담과 충돌하거나 균열하는 대신, 그로부터 분리되어 춘향의 실패한 미담을 복구하는 데 바쳐진다. 영화는 이를 두고 숭고한 사랑의 서사라고 말하고 싶을 테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어쩐지 민망하다. 방자의 이야기가 도달한 결말은 무언가 보아야 할 것들을 모조리 지워버린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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