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개 회사들의 라인업 홍보물과 전투적으로(?) 만든 미팅북. 총무게는 14kg이다!
칸! 모두가 한번쯤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해외업무를 하게 되면 매년 가야 하는 곳이다. 장기간의 출장, 좋은 영화를 사야겠다는 압박감 그리고 피 터지는 협상 과정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나는 다행히 즐기고 있다. 역시, 난 체질(?)인가 보다.
이번 칸의 목표는 외화수입과 공동제작 파트너를 찾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약 열흘 동안 70여개 회사 관계자를 만났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미팅을 너무 ‘전투적’으로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열정과 달리 올해 칸 마켓은 전반적으로 조용했다. 심지어 영화제 작품 중에서도 그렇다 할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가 없었다. 매년 밤마다 파티로 인해 시끄럽고 복잡했던 칸 거리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게다가 마켓에서 살 수 있는 작품도 별로 없었다. 전세계 경제가 좋지 않아서일까.
마켓도 조용하고 매년 터지는 사건사고도 없어 의아해하고 있던 중 드디어 일이 터졌다. 회사 동료가 한밤중에 울음을 터뜨렸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아프다고 하여 빨리 응급실로 향했다. 사람은 아파서 훌쩍거리는데 응급실 간호사는 너무 퉁명스럽고 오히려 진료카드에 오타냈다고 나에게 신경질을 냈다. 우여곡절 끝에 직원을 진료실로 들여보내고 몇분도 안 지나 팀장님과 나는 왜 이렇게 치료가 오래 걸리냐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슬로모션처럼 다가오는 구급차 요원들이 포착됐다. 다음해에도 응급실에 가고 싶다. 칸의 구급차 요원들은 레드 카펫의 연예인들만큼이나 잘생겼다!!
칸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나는 현실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제야 난 깨달았다. 전투적으로 미팅을 하긴 했지만 회사에 돌아가면 70여개 회사의 라인업을 모두 정리해서 위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아직도 보고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