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나오셨죠?” “<씨네21>에서 나온 영화평론가 송경원입니다.” 어색한 대화 끝에 겨우 표 한장을 건네받는다. 혹시 아는 얼굴이 없나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시사회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 말에 놀면서 일한다며 부러워하는 친구. 속 모르는 그 목소리가 얄밉다. 어느새 입장이 시작되고 상영관에 어둠이 빽빽이 들어차는 순간, 벌써 온몸이 긴장되고 괜스레 눈에 힘이 들어간다.
독자 신분으로 <씨네21>을 읽을 때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관심이 가지 않는 기사는 건성건성 넘기기도 하고 흥미로운 주제만 탐닉했더랬다. 하지만 이제 작은 꼭지기사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입장은 이렇게 다른가보다. 영화평론도 마찬가지다. 그저 재미있게 보고 넘치는 감상을 방만하게 풀어놓던 예전의 모습은 간데없고, 이젠 영화 보기 전부터 팽팽한 긴장을 느낀다. 누군가 이 글을 읽을 것이라 생각하면 한 장면도 사소하게 볼 수 없고, 한 문장도 허투루 쓸 수 없다. 평론가라는 명함에 짓눌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글에 대해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독자였던 시절,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았던 아름답고 예리한 글들을 여전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시사회가 끝난 뒤,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잃어버릴까 금방 생각난 말 부스러기를 수첩에 주워 담는다. 집으로 돌아와 모아온 문장조각들을 풀어놓으며 어디선가 이 글을 마주할 당신을 생각한다. 그 시절 내가 반했던 평론가들처럼 일필휘지 멋들어진 문장을 써내려갈 내공은 아직 없기에 투박한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는다. 헤매고 실수하고 멀리 돌아가기도 하며 갈지자로 걸어가다보면 언젠가는 당신의 마음을 낚아챌 문장을 써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심장을 움켜쥘 한 문장을 위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다시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