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 스타일, 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단정하게 포니테일로 묶은 올림머리에 껑충한 앞머리, 그리고 금욕적이라고 부를 만큼의 미니멀한 옷차림이다. 지난해 전시를 열었던 초상사진의 거장 유서프 카쉬는 헵번의 이러한 특성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사진작가였다. 그렇다면 현재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중인 또 다른 초상사진의 거장 세실 비튼은 어떨까. 그의 사진 속에서 헵번은 영락없는 ‘마이 페어 레이디’다. 꽃장식이 화사하게 달린 챙 넓은 모자와 갸냘픈 어깨와 목을 감싸는 과장된 레이스 장식은 은막의 신데렐라였던 오드리 헵번의 영화 속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있는 그대로를 더 날카롭게 잡아내는 것이 카쉬의 스타일이라면, 비튼의 사진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드리 헵번, 비비안 리, 마릴린 먼로, 그레타 가르보는 그의 앞에서 회화 속 여인처럼, 만개한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그녀들이 결혼식 사진을 찍는다면, 단연 비튼의 사진을 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국의 왕실 초상사진작가인 비튼이 그 제안에 순순히 응할 리는 없겠지만.
<세실 비튼: 세기의 아름다움전>은 비튼이 촬영하고 한 세기를 풍미한 여인들이 피사체로 나선 93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앞서 언급한 헵번, 비비안 리, 먼로 등을 비롯해 여섯명의 여배우가 주인공이다. 비튼의 작품은 런던 소더비의 세실 비튼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는데, 외부 반출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에 이번처럼 대규모로 비튼의 작품을 공개하는 건 드문 경우라고 한다. 19세기 교육 방식대로 영국 회화사와 복식사, 인물 심리와 소품 심리를 두루 배운 세실 비튼의 작품을 두루 관통하는 느낌은 ‘품격’이다. 사진이라기보다는 회화에 가깝고, 모자, 꽃 등의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오트쿠튀르 패션쇼에 나올 법한 찬란한 모자를 바꿔쓰고 여러 번 포즈를 취한 헵번 사진을 특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