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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아이콘] 삶, 잔인하여라

포토숍과 역사주의

발터 베냐민은 사진을 현실 인식의 탁월한 수단으로 보았다. 렌즈는 육안보다 현실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진촬영을 외과의사의 해부에 비유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확대촬영과 고속촬영, 혹은 시공을 분해해 다시 조립하는 몽타주를 통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현실의 본질을 보여준다. 스포츠 중계에서 정확한 판정을 위해 영상의 프레임을 정지시키듯이, 사진과 영화는 역사적 진행 속의 현실을 정지된 모습으로 보여준다. 베냐민은 그것을 ‘정지 상태의 변증법’이라 불렀다.

베냐민은 사진을 일종의 텍스트로 간주했다. 그가 사진에서 표제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그와 관련이 있다. 그가 모호이 나지의 말을 인용해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은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못 읽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둔 사진의 이상은 엑스레이 사진이나 천문학 사진처럼 그저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과학적 해독을 요구하는 이미지들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실재계를 찍은 사진이라도 그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어쩔 수 없이 상징계의 질서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뜻일 거다.

베냐민이 판타지영화에 적대감을 보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당시의 독일 감독들이 사진과 영화의 과학적 본질을 배반하고 “아리송한 상상”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과 영화는 매체의 성격상 현실에 대한 인식에 적합하다. 그것은 대중을 상징계로 인도한다. 하지만 판타지는 대중을 상상계로 데려감으로써 현실에 대한 진정한 인식을 방해한다. 이 때문에 사진과 영화를 판타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그는 ‘반동적’이라 불렀다. 상징계에서 상상계로 넘어가는 것이 일종의 지적 퇴행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역사에서 서사로

하지만 오늘날 사진은 베냐민이 살던 당시와는 성격이 달라졌다. 컴퓨터그래픽은 사진과 그림 사이의 차이를 지워버렸다. 90년대 이후 판타지의 산물조차 사진의 생생함을 가지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진은 더이상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의 화학적 증거가 아니다. 디지털 사진은 언제든지 가공할 수 있는 전자의 배열, 흔적없이 수정할 수 있는 데이터다. 이는 사진이라는 이미지가 상징계의 질서에서 빠져나와 상상계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위기에 처하는 것은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미국 작가 키스 커팅햄은 <허구의 초상>이라는 작품에서 성별이 불분명한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튜디오 초상 속의 소년(혹은 여인?)은 매혹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어딘지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그/그녀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인물은 작가의 소묘와 조소에 기초하여 제작한 골격에 사진으로 찍은 여러 인종의 피부를 입혀서 만들어낸 것이다. 한마디로 그/그녀는 디지털의 유령인 셈이다. 오늘날 사진은 피사체의 실존을 증명하지 못한다.

독일 작가 마티아스 베너의 작품은 언뜻 역사적 기록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널리 알려진 기록사진들 속에 포토숍을 이용하여 슬쩍 자신의 모습을 심어놓는다. 그는 빌리 브란트 총리와 함께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기념비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하고, 볼리비아 군인들과 함께 사살된 체게바라의 시체를 검시하고, 네이팜탄의 폭격을 맞아 불타는 마을에서 화상을 입고 뛰어나오는 베트남 소녀의 목격자가 되기도 한다. 포토숍을 타임머신으로 이용하여 유명한 역사 현장에 허구적으로 참여하는 셈이다.

저메키스 감독 역시 허구의 개인사를 공적인 역사와 뒤섞어 놓은 바 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톰 행크스)은 흑백필름으로 된 역사 속으로 들어가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다. 이로써 역사라는 상징계의 질서는 사정없이 교란된다. 역사는 짓궂은 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작가 아간 하라함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영웅들의 활약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다스 베이더는 얄타 회담에 참석하고, 스파이더맨은 노르망디에서 전투를 하고, 배트맨은 피델 카스트로와 친분을 자랑한다.

팩트와 픽션을 버무린 ‘팩션’ 역시 이러한 변화의 한 양상일 것이다. 오늘날 영화의 대중은 신윤복을 졸지에 여자로 둔갑시켜놓아도 ‘역사의 왜곡’이라고 항의하지 않는다. 몇년 전 역사학자들이 방송3사의 고구려 드라마가 사실을 왜곡했다며 관련 세미나를 연 적이 있다. 이 학문적 진지함도 대중의 눈에는 그저 몇몇 고리타분한 먹물의 해프닝으로 보일 뿐이다. 상징계와 상상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대중의 의식 속에서 역사는 그저 서사의 소재 혹은 배경일 뿐이다. 그들에게 진리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다.

이보다 흥미로운 예는 아마도 <워낭소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일 것이다. 팩션이야 어차피 관객이 그것이 허구임을 인지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이른바 페이크다큐멘터리도 그것이 페이크임을 관객이 인지한다는 전제 위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워낭소리>는 관객의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 허구의 장치를 사용하면서도 ‘연출 없는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의 규약을 따르는 척했다. 진리는 감동을 위해 희생됐으나, 오늘날 관객은 그 감동에 만족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상상계는 상징계를 교란하고 있다.

텔로스에서 미토스로

텍스트를 먹으며 자라난 386세대는 피억압자의 과거를 기억하면서 해방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희생은 미래에 온다는 그 해방된 세상 때문에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지를 먹으며 자라난 요즘 세대는 더이상 텔로스를 믿지 않는다. 텍스트에는 처음과 끝이 존재하지만, 이미지에는 처음과 끝이 없잖은가. 이미지 세대에게는 기념해야 할 과거도 없고, 그것을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할 미래도 없다. 그들에게 과거는 사극의 배경, 미래는 SF의 배경일 뿐이다.

역사의 최종 목적, 즉 텔로스(telos)를 대체한 것은 영웅들의 이야기, 즉 미토스(mythos)다. 텍스트 세대의 롤모델이 흔히 ‘위인’이라 불리는 역사적 인물들이었다면 이미지 세대의 그것은 신화적 인물들이다. 텍스트의 세대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라는 제목만 들어도 폭소를 터뜨릴 것이나, 이미지 세대에게 그 사내는 꽤 진지하게 삶의 이상으로 여겨질 것이다. 고대에는 조각가들이 영웅의 모습을 제시했다면 오늘날에는 그 일을 미디어가 하고 있다. 세속적 신화의 영웅들은 미디어가 빚어낸 인간 조각들이다.

이것이 이른바 ‘역사 이후’(post-histoire)의 의식상태다. 텍스트 시대에는 역사의 방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념의 폭력이 있었다. 베냐민은 역사의 끝에 다가오는 신의 심판이라는 의미에서 ‘신적 폭력’이라 불렀다. 이른바 ‘탈근대’(postmodern)라는 이름의 지적 유행은 우리의 의식을 이 역사주의적 강박에서 해방시켜주었다. 그렇다고 어디 우리가 더 자유로워졌던가? 오늘날 텍스트를 대신하여 실재를 표상하는 것은 이미지다. 신화적 폭력이라고 해야 할까? 이 상상계의 지배 역시 잔혹하기는 마찬가지다.

라캉에 따르면 상상계로 표상될 수도 없고, 상징계로 의미될 수도 없는 영역이 있다. 그가 ‘실재계’라 부른 그것은 이미지로 표상하거나 텍스트로 의미하는 순간 더이상 실재가 아니게 된다. 이미지든 텍스트든 자신을 가리키는 기호를 미끄러지게 하면서, 그리하여 상상계로도 상징계로도 편입되기를 거부하면서 끝까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 것.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현실? 실재? 신체?), 진리에 배반당하고 이제는 미에 모욕당하면서 구차하게 살아가는 그놈을 그냥 우리의 ‘삶’이라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