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랄까,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필요하지.” <방자전>에 나오는 이 대사는 영화의 이야기를 추동시키는 힘이자, 김대우 감독의 욕망이다. 전작인 <음란서생>에서 이야기를 짓는 것을 통해 새로운 기쁨과 권력에 눈뜬 한 남자를 조망했던 그가 이번에는 <춘향전>이란 고전과의 맞대결이란 과제를 수행했다. <방자전>을 단순히 고전의 재해석으로 분류하는 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김대우 감독은 원작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렸다. 상상이라기보다 발굴에 가까웠을 그 과정에 대해 물었다.
-<방자전>은 2번째 연출작이다. <음란서생>을 끝냈을 때와는 다른 소감이 있을 것 같다. =감독이란 직업인으로서보다는 자연인으로서 느끼는 게 있다. <음란서생> 때는 현장이 부담스러웠다. 작가로 살 때는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됐는데, 감독이 되어 현장에 갈 때는 모든 걸 결정해야 하니까. 그만큼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되어 끝내고 났을 때 그냥 쉬고 싶었다. 이번에는 그보다 더 힘들었지만 오히려 또 다른 작품을 좀더 나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지금의 화두는 ‘작업’이다. (웃음)
-<춘향전>을 놓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자 할 때 가장 크게 부딪친 부분은 무엇이었나. =일단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춘향전>일 수밖에 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야기 중에 속을 펼쳐보자는 거였다. 그게 그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카메라는 방자와 춘향을 비추고 있지만, 카메라의 시선 밖에 있는 인물이 봤을 때는 춘향과 몽룡의 이야기가 되는 거다. 그러니 다른 이야기를 쓰면서도 어떤 포인트에서는 <춘향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춘향전>이 하나의 축이 되는 게 아니라 걸림돌이 되더라. (웃음)
-원작의 틀거리를 아예 지우고, 캐릭터만 데려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쪽으로도 구상했을 것 같다. =욕구는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가치있는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게 녹록지 않더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쓸 때와는 다른 경험이었다. 원작인 <위험한 관계>는 살롱문화에 대한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조선시대로 가져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하지만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반면에 <춘향전>은 구조 자체가 심플해서 쉽게 바꿀 수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담백함에 덤벼들기가 어렵더라. <춘향전>의 그런 위력이 나에게 고통도 주고, 기쁨도 주고, 존경심도 주었던 것 같다. 당분간은 오리지널로만 영화를 만들고 싶을 정도다. (웃음)
-<방자전>의 초반부는 몽룡과 방자의 자존심 대결이자, 춘향과 방자의 설왕설래다. 방자의 입장이 약간 모호하다고 봤다. 몽룡을 이기려는 건지, 춘향이를 원하는 건지. =평소 고민하는 것 중 하나인데,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있고, 만족하지 못해서 발전하는 사람이 있고, 아예 그런 자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 중 행복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극중 방자는 서른 넘도록 자신의 처지에서 편안하게 살던 사람이다. 그런데 춘향이 나타가 그를 툭 건드리면서 뭔가 꿈틀하는 거지. 몽룡과의 대결에서 특별히 계급 대 계급의 싸움을 드러내려고 한 건 아니다. 그러기에는 내가 가진 독서량이 부족하다. (웃음) 다만, 큰 불만이 없이 살던 방자가 또 다른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방자의 진심에 대해서는, 사실 <음란서생>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서 이번에는 좀더 드러내려 했다. 처음에는 몽룡에 대한 반감이 개입하지만, 나중에는 춘향과 같은 계급으로서의 동료의식이 합쳐진다. 육욕과 첫인상에서 비롯된 소유욕과 쟁취욕이 어우러지는 한편, 측은한 감정이 다 포함된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자연인 김대우는 어느 쪽인가. 만족하고 사는 쪽인가, 불만을 느끼며 사는 쪽인가. =나는 소유욕이나 물욕은 없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에 욕심은 많다. 끝없이 일을 하려는 기질이 있다. 사실 두 가지는 좀 언밸런스이기는 하다. (웃음)
-<음란서생>의 윤서라고 볼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이 부분을 설정해놓고 어떤 생각을 했나. =큰 설정이나 장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작에 관한 가벼운 유머 정도였다. 끝에 가면 소설을 의뢰하는 게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넣은 거고. <음란서생>과 DNA를 엮으려고는 안 했다. 주변에서는 <음란서생> 때 나온 인봉거사나 추월색 같은 이름을 써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한석규를 카메오로 출연시키자는 말도 있었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카메오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그렇게는 안 했다.
-초반부의 웃음은 대부분 마노인(오달수)이 방자에게 연애비법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그렇게 되더라. 내가 내 영화의 주인공에 대한 결벽증 같은 거다. 너무 능수능란하거나 너무 무능한 것에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보완책으로 마노인이라는 멘토를 개입시켰다. 말하자면 능수능란하지 않은데 배워서 무능하지 않은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이번에 오달수를 보면서 내가 그를 정말 좋아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음란서생> 때는 잘하는 배우라고만 생각했는데. 마노인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살린 웃음이 정말 많다.
-마노인이 전수하는 장판봉 선생의 여성공략법은 어떻게 구상한 것인가. 어딘가 어설퍼 보여서 그렇게 공략할 수 있을지 의문인 비법이었다. =너무 심리적이거나 적나라하지 않은 방법을 여러 개 생각했다. 그중에서 고른 건데, ‘뒤에서 보기’같은 방법은 남성 스탭들이 뭐라 그랬다. 너무 정적이라 감이 안 온다는 거지. 그래서 그걸 쓴 나도 마음이 어두웠다. (웃음) 그런데 나중에 여성 스탭들이 일리가 있다고 하더라. 다시 흥이 나서 열심히 찍었다.
-<음란서생>에 ‘댓글’과 ‘동영상’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처럼 여기서는 ‘은꼴편’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야한 사이트 보면 ‘은꼴사’(은근히 꼴리는 사진)라는 게 있지 않나. 보면 사람들이 결정적인 부분에서 약간 고어풍의 단어를 쓰더라. ‘은꼴사’란 단어도 고어풍의 은율을 갖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가진 해학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 노골적인 단어를 내세우기보다는 약간 비트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이 ‘은꼴사’란 단어를 의외로 모르더라. 그것과 연결해 꽤 재밌게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월매를 배우 김성령이 연기했다. 월매의 동생 월래(정양)도 나온다. 이들의 이야기가 클 것 같았는데, 의외로 크지 않았다. =나도 김성령을 선택했을 때는 내심 단단한 준비를 했다. 쉽게 말하면 춘향이가 16살이고, 월매가 32살이라 방자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놨었다. 하지만 결국 촬영 전에 축소시켰고, 촬영 뒤에도 축소시켰다. 원래는 월래와 마노인간의 이야기가 강력하게 있었다. 춘향의 성격적 DNA를 보여주려는 거였는데, 서브 인물들이 너무 주축이 되는 것 같더라. 전체적으로 조·단역 배우들이 너무 잘했다. 중심인물을 살리려 한 거였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방자전>은 정사장면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음란서생> 때는 극중 대사를 갖고 말하자면 음란함에 대해 “젠체하는 게 있었다”고 본다. <방자전>에는 그보다는 좀더 적극적이다. =<춘향전>의 원전 자체가 워낙 격렬하다. 나름 뒷방에서 일어나는 일도 앞방에 버금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체위나 호흡에서 더 격렬해야 했다. <음란서생>이 어루만지는 쪽이라면 이번에는 서로 부딪친다는 기조였다. 그런 묘사가 상품화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내심 성적인 표현에서 자유로운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암행어사의 업무에 대해 어떤 조사를 했나. 일반적으로 아는 암행어사가 이몽룡과 박문수 정도인데, 미담을 찾는다는 업무가 자연스럽게 와닿지는 않았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춘향전>으로 돌아가기 위한 포인트를 만들려는 설정으로 나온 것 같다. =암행어사 출두를 전제로 놓으면서 만든 부분이다. 전제로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어렵더라. 미담이라는 측면에서 춘향이란 캐릭터와 사소한 개인감정과 얽힐 수 있다고 봤다. 몽룡이 이뤄낸 ‘어사’라는 권력이 사실 별게 아니라는 점도 드러내려 했다.
-변학도 캐릭터와 배우 송새벽의 조합이 전체적으로 큰 인상을 주더라. =<춘향전>의 변학도는 일방적으로 포악한 캐릭터다. 일부러 일방적이지는 않지만 포악한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송새벽은 <마더>에서 보는데, 저런 남자가 변학도라면, 하고 생각했다. 사실 극중 변학도의 분량상 경력이 많은 배우들이 관심을 가졌었다. 주변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가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다.
-몽룡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려는 것이다. <음란서생>도 마찬가지지만, <방자전>도 이야기에 대한 욕망이 겹치는 영화라고 봤다. 관객은 방자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 안에 또 다른 인물들이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건 감독 자신의 욕망이기도 할 테고. =의도적인 집착은 아니었는데, 내가 이야기를 운영한다는 것에 대한 어떤 기쁨에 대한 표현이다. 자랑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란 존재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감독으로서 다른 감독과 비교할 때 그나마 가산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운용일 것이란 강박관념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쓴 이야기에 의지하면서 이야기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성질이 인물에게 투영된 것 같다. ‘이야기’라는 단어도 많이 등장하고. 좋게 말하자면 이야기에 대한 오마주랄까. 모든 이야기는 그 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걸 드러내면서 존경을 표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방자전>의 중심 이야기는 <음란서생>에 비해 그리 굵지 않다. 오히려 캐릭터들이 더 드러나는 영화다. =<음란서생> 때 내가 갖고 있는 내러티브의 굵은 줄기를 고집하다 보니 배우들의 생기가 적어졌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내가 그림자로 들어오고 배우들이 재밌어할 만한 이야기를 하려 했다.
-<방자전>은 크게 2가지로 나뉘고 있다. 전반부가 질투에 의한 대립을 그린다면, 후반부의 결론은 순애보다. 전반부의 전복적인 쾌감이 사그라지는 게 있다. =어떤 게 더 상업적인지는 모르겠다. 재기발랄하게 밀고 가는 게 더 상업적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멜로적으로 마무리하는 게 상업적일 수도 있다. 나로서는 <방자전>이 <춘향전>과 견줄 만한 사랑 이야기였으면 했다. 원래의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사랑 이야기를 찾고자 했다.
-연출작은 2편이지만, 각본을 맡은 작품으로서는 9번째 작품이다. 양쪽 입장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있을 것 같다. =<음란서생>은 감독보다는 작가의 연장선상에서 만든 작품이다. 작가로서 자기 작품을 완성해보는 작업이랄까. <방자전>은 그때보다 내가 감독으로서 리드하는 게 더 컸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내가 쓴 각본에서 좀더 자유로워졌다. 예전에는 각본을 잘 살리려면 어떻게 연출해야 할까를 고민했는데, 이번에는 연출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각본을 써야 할까를 많이 고민했다. 감독으로서의 의식이 조금 강해진 것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