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체계적으로 과학기술을 반영한 예술작품이 자주 눈에 띈다. 기술이 발달하기도 했거니와 과학과 예술의 마인드를 두루 갖춘 르네상스적인 예술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까.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키네틱(kinetic) 아티스트들이 있다. 키네틱 아트란 한 작품 안에서 시각적인 변화나 움직임을 두루 나타낼 수 있도록 고안된 예술품을 뜻한다.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뻔뻔스럽게 세워둔 마르셀 뒤샹의 작품 <모빌>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그 명맥은 이후 (진짜) 모빌의 창시자라 불리는 알렉산더 콜더 등을 거쳐 21세기 키네틱 아티스트들에게 이어져왔다. 그 흐름을 잇는 자가 바로 테오 얀센이다.
테오 얀센은 네덜란드 출신의 키네틱 아티스트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1990년부터 네덜란드 해변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걸을 수 있고 진화도 할 수 있는 <해변동물>(Strandbeast)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연성이 좋은 플라스틱 튜브와 나일론 끈, 고무링으로 만들어진 이들 작품은 언제라도 바람의 흐름과 세기에 따라 모양을 재정비할 수 있다. 자연에 가까워 보이는 그의 작품에 주목한 유엔환경계획은 얀센에게 2009년 에코 아트 어워드상을 주었다. 수상에 걸맞게 그의 작품에는 모두 ‘Animaris’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라틴어로 동물(Ani)과 바다(Maris)를 합성한 단어다. 얀센은 그렇게 자연과 생명의 공존을 주요 테마로 삼아 작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얀센의 작품을 국내에 첫 소개하는 자리이자 세계 최대 규모로 열리는 행사다. 얀센의 첫 작품인 아니마리스 불가리스부터 모 자동차 CF에 사용된 아니마리스 오르디스까지 17여점이 전시된다. 세계 최대 규모라면서 겨우 열일곱점이냐고 반문하는 관객도 있겠지만 작품 한점의 규모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공룡만한 덩치에 우람한 구조물을 지닌 테오 얀센의 아니마리스들은 관객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처음엔 그 풍채에 놀라고, 다음엔 그 움직임에 놀란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아니마리스들이 어느 곳에 설치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날씨와 바람의 세기에 따라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기 때문이다. 자연친화의 안온함과 변화의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