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빨래> 학전 그린 소극장 | 오픈런 작·연출 추민주 출연 엄태리, 정문성, 이봉련, 이미선, 맹상열, 이영기, 조훈, 강유미 등 02-928-3362
창작 뮤지컬 <빨래>가 1천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작품으로 출발한 <빨래>는 2005년 초연 이래 이번이 6차 공연이다. 6월27일까지며, 7월7일부터 새로운 팀으로 7차 공연을 이어간다. 한국 뮤지컬의 희망으로 커가고 있는 이 작품의 매력은 뭘까.
한국사회에서 주눅 든 채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들,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달동네의 고단한 삶. 이렇게 보면 뮤지컬 <빨래>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연극과 영화, TV에서 이미 수십번도 더 우려먹은 소재가 아닌가? 그러나 <빨래>를 진부하다고 말할 수 없다. 등장인물들의 삶이 너무 우리네 삶과 닮았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지지리궁상이다. 한국에 온 지 5년 된 몽골 청년 솔롱고는 악덕 사장한테 월급을 떼인 채 옥탑방 신세다. 강원도 아가씨 나영은 서점 사장에게 겁없이 대들다가 창고로 쫓겨난다. 방값을 제때 낸 적이 없는 이혼녀 희정 엄마는 구씨와 만나면 싸우는 게 일이고, 전기료·똥값을 꼬박꼬박 챙기는 주인 할매는 40년째 장애인 딸을 수발하고 있다. 땟국 빠진,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는 곧 ‘소시민의 일상’이다.
<빨래>는 소극장이라는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영리함을 보인다. 배우들 동선을 무대라는 사각형 테두리에 가두지 않았다. 객석 통로는 골목길이 되고 비좁은 버스가 되기도 한다. 이로써 극의 주제인 ‘소통’은 관객에게도 확대적용된다. 관객을 직접 극에 참여시키기도 한다. 2막 도입부, 솔롱고 역의 배우가 우스꽝스러운 작가 모습으로 등장해 팬 사인회를 여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객석에서 관객을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해 사인을 받고 사진도 찍는다. 그리고 커튼콜을 마치고 극장 복도에서 배우들이 공연장을 떠나는 관객을 배웅하는 모습은 나영과 솔롱고의 사랑노래 <참 예뻐요> 제목만큼이나 예쁘다.
그들의 삶이 힘있는 이유에는 음악도 한몫 한다. 극의 초반 <서울살이 몇해인가요>라고 속삭이는 넘버는 고단한 서울살이가 담겨 있고, 그럼에도 <빨래> 넘버 가사에서 관객은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극의 하이라이트, 비눗방울이 무대 가득 흩날리는 빨래장면에서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라는 경쾌한 노래(<슬플 땐 빨래를 해>)가 삶의 찌든 때를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있는 것들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뮤지컬 <빨래>와 함께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봄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