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욕심 많은 귀족과 성직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백성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의적' 로빈후드 이야기는 그간 영화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소재다.
알렌 드원 감독의 '로빈후드'(1922)부터 케빈 레이놀즈 감독의 '의적 로빈후드'(1991)까지 수많은 감독이 실존 인물인지도 확실치 않은 '의적' 로빈후드의 이야기를 자신의 스타일로 덧입혀 변주해왔다.
올해 칸 영화제(5.12-23일)는 개막작으로 '로빈후드'를 택했다. 로마시대 검투사 이야기를 다룬 '글래디에이터'(2000)의 명콤비 리들리 스콧 감독과 배우 러셀 크로가 또다시 손잡고 만든 할리우드 영화다.
칸 영화제는 상업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영화들을 2000년대 이후 줄곧 개막작으로 내걸었으며 작년에도 애니메이션 '업'이 개막작의 영예를 차지했다. 묵직한 주제와 재미를 더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로빈후드'는 이러한 칸의 지향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영화다.
12세기 영국. 사자왕 리처드가 이끄는 십자군 원정대를 따라나선 로빈 롱스트라이드(러셀 크로)는 현명하지만 포악한 리처드에게 실망한다.
어느 날 리처드 왕이 전투에서 사망하자 로빈은 혼란한 틈을 타 탈영해 영국으로 돌아가려 한다.
때마침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아 죽어가는 사자(使者)를 발견한 로빈은 그를 대신해 리처드 왕의 왕관을 영국 왕실에 전한다.
이 과정에서 사자였던 녹슬리(막스 폰 시도우) 경의 아들 행세를 한 로빈은 녹슬리 경을 찾아가 아들의 죽음을 알린다. 로빈은 마치 친아들처럼 자상하게 대해주는 녹슬리 경과 그의 며느리 마리온(케이트 블란쳇)의 환대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영화는 숲을 기반으로 의적활동을 벌이는, 우리에게 친숙한 로빈후드 이야기가 아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왜 로빈이 숲으로 들어가 로빈후드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2시간 20분 동안 설득력 있게 풀어놓는다.
초반 액션드라마와 멜로드라마가 뒤섞인 '로빈후드'는 중반부터 급격히 정치색을 띤다. 존왕의 가혹한 수탈과 실정으로 영국 전역이 피폐해지자 영주들은 '법에 의한 지배'를 주장한다. 존왕은 결국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을 승인한다.
재밌는 건 존왕이 대헌장을 승인하는 데 석공(石工)의 아들 로빈후드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로빈은 "일어나라 일어나라, 양이 사자가 될 때까지"라는 내용을 담은 명연설로 군인들을 감동에 젖게 한다. 존왕은 성난 영주와 군인들의 요구를 일단 받아들인다.
프랑스 성에서 벌어지는 사실감 넘치는 초반 전투장면과 해안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전투장면은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할 만큼 격정적이다. 특히 영화 말미 로빈후드가 화살을 쏘는 순간을 느린 화면으로 포착한 디테일은 매우 섬세하다.
수십여 채의 중세 건물로 이뤄진 세트장과 2만 5천 벌에 달하는 의상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영화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힘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러셀 크로다. 크로는 표정을 별로 쓰지 않으면서도 방황하는 로빈후드의 내면에 가닿는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는 약 10㎏을 감량하고 활쏘는 장면을 위해 3개월간 호주에서 강도 높은 궁수훈련을 받았을 정도로 영화에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대배우 시도우의 연기 또한 자연스럽다. 블란쳇은 강인한 여성 역할에 딱 어울린다.
5월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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