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놀이>라는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겨울 내내 붙잡고 있었지만 진도는 지지부진하다. 겨울 동안 한산했던 7명의 공동 작업실이 날씨가 풀리니 제법 복작거린다. 작업실 구석 자리에 회색 천을 둘러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헤드셋을 낀 채로 작업한다. 어릴 땐 종이박스 속을 좋아했고, 대학 다닐 때에도 구석에서 작업하길 좋아했다. 그때부터 남아 있는 이런 습관은 애니메이션 작업이랑 잘 어울린다.
오랜 시간 혼자서 작업해야 하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은 혼자 시간을 잘 보내는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규칙적으로 작업해나가고, 그리고 내 안의 문제를 거리를 가지고 관찰하며 작업해나가는 과정은 나에겐 치유와 위로의 시간이기도 했다. 한데 요즘은 매일매일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게 어렵다. 잘해왔던 것들이 언젠가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작업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이 부분이 오히려 가장 견디기 힘든 요소가 되었다. 갑갑한 느낌을 다스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난 평생 혼자서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왔다. 나만의 닫혀진 공간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작업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 보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인가 보다.
이번 작업이 끝나면 회색 천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만나야겠다. 좀더 많이 움직이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좋아하고…. 조금은 어색하고 서툴지라도 좀더 시도하고 노력하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