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히 잠들다> Sleep Furiously
2008년 | 기디언 카플 | 90분 | 1.85:1 아나모픽 DD 5.1, 2.0 영어 & 웨일스어 | 일부 영어 자막 뉴웨이브필름(영국, 1장)
화질 ★★★☆ 음질 ★★★☆ 부록 ★★★★
1957년,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문법은 맞지만 뜻을 따지자면 무의미한 문장’의 예로서 ‘무색의 초록 발상들은 맹렬히 잠든다’(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라는 알쏭달쏭한 문장을 내놓았다. 기디언 카플이 데뷔작에 붙인 제목 <맹렬히 잠들다>는 촘스키의 유명한 문장을 다시 언급한 것인데, 그 문장에서 딱 두 단어만 뽑아온 까닭에 더욱 불분명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게다가 ‘씩씩거리며 잠든 동물’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 숨은 의미를 쉬 드러내지 않는 영화는, 일렉트로닉의 기인 ‘아펙스 트윈’이 제공한 음악만큼 모호하다. 그래서인지 <맹렬히 잠들다>를 ‘2009년의 영화’로 선택한 영국의 평론가들조차 ‘설명하기 힘든’, ‘불가해한’ 등의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맹렬히 잠들다>는 중부 웨일스의 작은 마을 ‘트리퓨릭’에서 농업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무심코 보기에 <맹렬히 잠들다>는 심심한 풍경과 따분한 일상의 나열에 불과하다. 한적한 시골길, 종을 울리며 땅딸보 개와 걷는 노인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가 길, 숲, 언덕, 집, 학교, 회관을 누빌 동안, 농부와 아이와 노인은 실로 조용하고 느린 몸짓으로 삶을 유지하고, 가축과 동물은 그들의 주변을 한가로이 돌아다니며, 계절은 따뜻한 봄과 여름을 지나 어느새 은빛 겨울을 맞는다. 책을 싣고 공동체 사람들을 방문하는 이동도서관의 사서와 종종 등장하는 감독의 어머니를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영화의 큰 줄기를 세우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도대체 이 영화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리둥절할 즈음, 언덕의 능선을 따라 이동도서관의 노란 밴이 경쾌하게 이동하는 광경을 보자 슬며시 미소가 흘러나온다. 얼굴을 드러내기는커녕 타자의 생활에 전혀 개입하지 않을 듯 보이던 감독은 사실 은밀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카플의 16mm 카메라는, 장인처럼 능수능란하게 일을 치르는 농부와 선생과 주부의 손길에 다름 아니다. 간혹 화면을 가득 채우는 컬러판과 시간의 흐름이 남긴 고속 이미지에 작품의 독특한 모양새와 연출자의 존재를 직접 심어두기도 하지만, 대개의 장면은 사람과 공간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탐구한 다음 가장 적정한 위치에서 타이밍을 맞춰 잡아낸 것들이다. 세심하게 직조된 수공예품이란 이야기다.
카플은 끝부분에 배치한 몇 가지의 이미지와 손수 쓴 몇줄의 문구로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다. 아늑하고 넉넉한 일상에 대한 묘사를 마친 뒤, 카메라는 경매장에 내놓은 농기구들과 쓸쓸하게 남겨진 어느 농가의 구석구석을 묵묵히 바라본다. (극중 소개되지는 않지만) 유대인인 카플의 부모는 나치를 피해 독일을 떠나 트리퓨릭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카플이 나고 자란 고장은 지금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인구는 줄어들고, 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함께 마련했던 전원의 삶은 머지않은 미래에 사라질 거다. 자치회의에 모인 사람들의 굳은 표정은 그들이 직면한 상황을 대변한다.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맹렬히 잠들다>는 프랑스 작가 레이몽 드파르동이 촌부들과 수십년간 교감을 나누며 찍은 <농부의 기록 3부작>과 비교할 만하다. 두 감독은 언젠가 자취를 감출 존재들 앞에서 슬퍼하는 대신 그것이 품은 소중한 의미를 찾고, 현대의 삶이 잃어버린 가치에 빛을 비춘다. 카플은 ‘모든 것의 종말을 감지한 순간 나는 말할 용기를 얻었다. 언어가 아닌 용기를 말이다’라고 써놓았다. 그러니까 <맹렬히 잠들다>의 평에 등장하는 ‘시’, ‘명상’, ‘연서’, ‘애가’ 같은 수식어가 다 무슨 소용이랴, 중요한 건 감독의 태도를 읽으려는 마음인 것을. 더욱이 DVD는 파일럿 성격의 흑백 중편영화 <이동도서관에 대한 스케치>(57분)를 부록으로 수록해 감독의 뜻을 잘 읽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