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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essional] CAD 배워두길 잘했지 뭐야
강병진 사진 최성열 2010-04-29

<박쥐> <마더>의 이내경 미술팀장

이내경 미술팀장은 스스로 “운이 좋았던 미술팀원”이라고 말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시작으로 <태풍>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마더>로 이어진 그의 경력은 영화미술 종사자로서 많은 걸 시도했을 법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일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뿌듯한 필모그래피다.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 <괴물>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맡았던 류성희 미술감독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일을 할 때면 북카페를 자주 찾는다는 그를 북촌의 한 북카페에 데려갔다. 이내경 팀장은 언제나 들고 다니는 디지털카메라로 카페 안의 소품과 책 속의 이미지들을 스크랩하기에 바빴다.

-영화미술은 어떻게 하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영화와 미술을 좋아했다. 물론 그때는 영화미술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미대에서 공예를 전공했고, 졸업 뒤에는 평범한 건축사무소에서 1년간 일을 했었다. 하는 일이 주로 복사하고, 차 심부름하다가 도면을 디벨로프하는 거였다. 1년을 하고 나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더라. 그때쯤 영화미술이라는 파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인터넷으로 ‘영화미술’ 네 글자를 검색했더니, 지금은 없어진 청솔아트란 세트회사가 떴다. 마침 구인광고가 있어서 지원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붙어버렸다. 미술팀이 아닌 세트팀이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가 처음으로 참여한 영화였고, 이후 <태풍> <백만장자의 첫사랑>에서 미술팀으로 참여했다.

-최근 몇년 동안 참여한 작품들은 주로 류성희 미술감독과 함께했더라. =친한 언니가 류성희 감독님과 <괴물>에 참여했었다. 진짜 부럽더라.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보이>를 보면서 그분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류성희 감독님과 함께 일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앞두고 언니가 사정이 생겨 공백기를 갖게 된 거다. 그때 나를 추천해주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막상 류성희 감독님을 만나고 나니 영화미술이라는 게 정말 어렵더라. 매번 깨졌다고 보면 된다. (웃음)

-설마 모든 게 운 때문이었을까. =행운 외에 도움이 된 게 있다면, 대학 때 따놓은 CAD 자격증이다. (웃음) 선배들이 먹고살려면 배워야 한다고 해서 한 건데, 영화미술팀원 중에 CAD를 가지고 도면설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더라.

-영화미술을 하면서 처음 생각보다 좋았던 것과 안 좋았던 것이 있다면. =사실 나는 현장진행을 힘들어하는 편이다. 그래도 해야 하니까 하기는 하는 거다. 영화미술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다. 글로 써진 시나리오에서 새로운 컨셉을 찾아갈 때가 가장 재밌다. 물론 해결이 안되는 부분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퍼즐이 잘 맞아서 결과물이 잘 나올 때의 기분은 굉장히 좋다.

-이 일을 하면서 후회한 적은 없나. 이를테면 수입문제라든지. =수입은 뭐… 그동안 작품이 끊이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웃음) 그보다는 사람간의 소통 때문에 후회한 적이 더러 있었다. 영화하는 사람들이 또 기가 세지 않나.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조율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서로를 힘들게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어떤 일을 하든지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으로 여기고 있다.

-영화미술 종사자를 꿈꾸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만약 내가 대학 시절에 영화미술이란 분야를 알았다면, 방학 기간을 투자해서 일을 해보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오히려 그때 일을 하지 않고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얻은 게 다행인 것 같다. 기술로만 승부를 걸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지식이나 경험도 영화미술에 도움이 된다. 물론 남들보다 많은 기술을 공부하는 건 필요하다. 여건상 많은 팀원을 뽑을 수는 없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 같다. 나도 대학 시절에는 CAD를 배웠지만, 일을 하던 도중에 학원에 가서 3DMAX를 공부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만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도 지금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많아져서 또 다른 공부를 하는 중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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