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엔터테인먼트는 얼마 전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로 사옥을 옮겼다. 허허벌판에 서 있는 빌딩은 디지털 사원증이 없는 사람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의 요새로, 수많은 직원들이 한국영화 제작과 배급과 마케팅을 고민하며 밤을 새운다. CJ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조범상(28)씨는 2008년 인턴으로 입사했다가 같은 해 12월29일 정직원이 됐다. 그저 대기업이 좋아서 CJ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건 아니다. “물론 대기업이니까 당연히 그에 맞는 취업준비를 해서 그룹 공채로 들어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케팅 부문에 지원했고, 주변에 마케팅 부문에서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천생 영화 마케터라는 소리다.
-왜 CJ엔터테인먼트에 입사했나. =영화 일을 하고 싶었고, 마케팅 일도 해보고 싶었다. 둘을 접목할 수 있는 게 영화 마케팅이 아닐까. 영화업인 동시에 마케터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꿈꾸던 직장이다.
-영화 마케터가 되기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게 있나. =군대 갔다와서 어학연수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흔한 랭귀지 스쿨은 좀 심심해 보였고, 영화쪽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뉴욕필름아카데미를 1년 과정으로 수료했다. 프로듀서 과정이었다. 뉴욕에서 공부하는 동안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뉴욕지사의 인턴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광고 마케팅쪽에 더 흥미를 갖게 됐다. 사실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실용적인 지식을 많이 배운 것 같지는 않다. 프로듀싱이란 건 파이낸싱이나 마찬가지다. 미국 현지에서 프로듀서로 일할 사람들을 위한 코스다. 하지만 같은 직종을 꿈꾸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공부하는 게 행복했다.
-일을 시작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 =한번은 <마더>로 봉준호 감독과 마케팅 회의를 했다. 평소 좋아하던 감독과 도시락도 같이 까먹으면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자기 영화에 대한 마케팅적인 관점도 아주 명확하게 갖고 있어서 놀랐다. 아, 예술만 하는 게 아니라 상업적인 마인드도 훌륭하구나 싶었다.
-막연히 생각하던 영화 마케팅 일과 실제로 겪어보니 다른 점은 뭐였나. =환상은 크게 안 가지고 들어왔다. 영화 마케팅이 화려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자질구레하고 복잡한 일들을 막내가 맡아서 해야 하니까. (웃음) 환상을 가지지 않았는데도 처음엔 약간의 괴리가 느껴지긴 했다. 입사 초기엔 주말이 없었다. 배우들 무대인사가 거의 주말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로 담당이 없이 모두 서포트를 해야 하다보니 성수기 때는 주말을 잊고 살았다. 7주 연속 주말 근무하니까 병도 나더라. (웃음) 그래도 배우들과 부딪치며 일하는 게 재밌었다.
-지난 1년간 일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시나리오를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 사람들이 모르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개봉 전에 볼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던 것 같다. 침대에 누워서 시나리오를 읽고 있으면 나도 영화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생각과 다른 점이라면 우린 대기업 사원인데 같이 부딪치며 일하는 사람들은 영화계의 자유로운 영혼들이니까, 그런 데서 오는 괴리가 있긴 하다. (웃음)
-어떤 마케터가 되고 싶은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알다시피 영화판이 생각보다 좁지 않나. 겨우 일년 근무했지만 많은 사람을 만났다. 십년을 일하면 영화계의 모든 사람을 알게 되지 않을까. 같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재미있게 일하고 싶다. 어쨌거나 엔터테인먼트니까. (웃음)
-영화 마케터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은. =예술적인 영화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직업을 못 견디는 것 같다. 영화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경영이나 마케팅 같은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학교 다니면서도 경영학 수업을 많이 들었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CJ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고 싶다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 나는 어쩌다보니 그런 밸런스가 잘 맞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