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 야스미나 레자의 전편 <아트>를 본 관객이라면 모를까, 제목과 연출자 이름을 보고 무거운 사회극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엄청 웃기면서도 예리한, 블랙코미디다.
두 아이가 싸웠다. 미셸의 아들 브루노가 알랭의 아들 페르디낭이 휘두른 막대기에 맞아 앞니 2개가 부러졌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막이 오르면 두 부부가 점잖게 소파에 앉아 있다. 악덕 제약회사를 변호하는 변호사 알랭(박지일)과 부인 아네트(서주희),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미셸(김세동)과 베로니크(오지혜) 부부가 미셸의 집에서 만났다. 배운 부모들답게 원만한 합의를 위한 만남이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진다. 숨은 감정의 가시가 서서히 성질을 돋우며, 취향과 세계관의 차이에 부부간 갈등까지 뒤엉키면서 진흙탕 싸움이 된다.
이 단조로운 줄거리를 유쾌하게 이끄는 힘은 캐릭터에 있다. 휴대폰을 손에서 절대 놓지 않는 변호사 알랭은 두둑하게 합의금이나 던져주고 얼른 일터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인 일중독자다. 그의 아내 아네트는 남편의 무성의 때문에, 또 친구를 때린 아이의 엄마라는 죄책감 때문에 남의 집 거실에서 먹은 걸 다 토해낸다. 논픽션 작가인 베로니크는 아이들의 싸움이 먼 훗날 다르푸르 대학살 같은 사태의 씨앗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오버한다. 그녀의 남편 미셸은 “좌파 진보”처럼 보이길 원하는 부인의 방식대로 사는 남자다. 극의 중반부 사과와 무조림 파이에 술이 한잔 들어가며 상황은 묘하게 바뀐다. 아네트가 인정사정없이 구토를 하더니 “브루노가 맞을 짓을 했다”, “우리 아들은 맞고 들어오지는 않아요”라며 본색을 드러낸다. 베로니크 역시 술 한잔 마시고 격렬히 반발한다. 부부간의 싸움은 또다시 남자와 여자들로 편을 바꿔 전개되다가 결국 난장판으로 변해버린다. 그 사이 속물성이, 나약함이, 허영이, 무절제함이 툭툭 드러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알랭의 휴대전화는 극의 집중도를 높여주는 재밌는 장치다. 휴대전화 벨이 울릴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캐릭터들처럼 어느 순간 관객도 휴대전화 벨이 울리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90분 동안 어느 누구 하나 튀지 않는 네 배우의 노련한 연기가 웃음의 뒷심임은 당연한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