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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감춰진 코드를 읽어라
장영엽 2010-04-15

먀오샤오춘 개인전: New Works/5월16일까지/아라리오 갤러리 서울/02-723-6191

, 100x211cm, digital painting on canvas, 2010

위트 지수 ★★★★ 해석하는 재미 지수 ★★★★☆

학자들은 고상한 투가(그리스·로마의 전통 의상)를 벗어던졌다(<아테네 학당>). 정적인 소풍을 즐기던 무리는 머리에 꽃을 달고 파티를 즐긴다(<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잔인한 전투는 영화 촬영의 한 장면으로 격하되었다(<죽음의 승리>).

중국 작가 먀오샤오춘의 작품은 도발적이다. 그는 보티첼리, 라파엘, 브뤼겔 등 미술사에서도 손꼽히는 예술가의 수작들을 디지털 페인팅으로 재창조한다. 짓궂은 건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을 작가와 똑닮은 아바타로 치환했다는 점이다. “미켈란젤로가 근육질 남녀를 아바타 삼은 예를 따른 것”이라나 뭐라나. 비슷한 외모를 지닌 집단 아바타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헐벗은 몸을 맥없이 드러낸다. 권위는 무너지고, 위트는 솟아난다. 그러나 먀오의 작품을 ‘도발’이란 단어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의 그림에서는 서양미술사를 성실하게 배운 이의 사려가 엿보인다. 라파엘의 그림 <아테네 학당>을 차용한 먀오의 동명 작품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하늘과 땅을 향했던 그 유명한 손가락!)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 그림에서 두드러지는 건 사람이 아니라 배움의 공간을 가득 덮고 있는 넝쿨이다. 지식과 사상은 잎사귀처럼 언젠가 시들어 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 미술사로 석사 학위를 받은 이답게 원작에 대한 지식을 꼬아 자신의 할 말을 전달하는 먀오의 그림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보는 재미도 있지만, 감춰진 코드를 읽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까.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먀오샤오춘의 개인전에서는 국내에 선보인 적 없는 그의 신작 10여점을 소개한다. 이전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먀오의 그림에는 고전과 현대미술, 중국인의 정체성과 서양미술사 학자의 정체성, 현실과 가상현실이 한데 뒤섞여 있다. “예술은 난세에서 어렵게 태어날 수 있으며, 성세에서 순조롭게 태어날 수도 있다. 즉 빈곤하고 초라하며 고독하고 억압받을 때 생성될 수도 있으며, 풍족하고 유쾌하며 심지어 물욕이 흘러 넘쳐날 때에도 생성될 수 있다. 예술 자체는 순수하며, 마치 이른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다.” 그러므로 역사의 한가운데서 물흐르듯 작업하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