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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뒤] 사랑은, 사이공 언덕 위에 남았네
심은하 2010-04-08

뮤지컬 <미스 사이공> 4월4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 4월16일~5월1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5월14일~9월12일 충무아트홀 대극장 출연 김보경, 임혜영, 이건명, 마이클 리, 김성기, 이정열, 김선영, 김우형, 이경수 등 문의 02-518-7343

이 먹먹함은 뭘까. 공연장을 나오는 길, 머릿속에 맴돈 생각이다. 4년 만에 다시 막을 올린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시간은 1970년대에 머물러 있지만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뮤지컬 버전인 <미스 사이공>은 1975년 사이공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부대의 철수가 시작되는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한 미군과 베트남 여인의 러브 스토리다. 미군 크리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지고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킴. 정혼자 투이의 구애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힘들게 살아가던 킴은 극적으로 크리스와 재회하지만 그의 곁에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음을 알고 절망에 빠진다. 결국 그녀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린다.

<Sun & Moon> <Morning of the Dragon> &li;I Still Belive> 등의 감미로운 노래는 <미스 사이공>을 잊을 수 없도록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여기에 초연 때부터 화제가 된 블록버스터급의 볼거리 공습이 더해진다. 극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나이트클럽 드림랜드는 오케스트라의 생생한 음악과 함께 베트남 정글을 되살려내고, 베트콩이 사이공을 점령한 뒤 군사들이 보여주는 애크러배틱은 자칫 무겁게 가라앉을 수 있는 흐름을 빠르게 끌어올린다. 특히 2막에서 미군의 베트남 탈출장면은 압권. ‘두두두…’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미 대사관 허공을 가로지르며 착륙하는 3D영상의 헬리콥터 탈출신은 병사들의 탈출을 자연스럽게 재현한다.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엔지니어(김성기)는 슬픈 사랑 이야기에 웃음을 일으킨다.

사실 <미스 사이공>의 이야기는 유별나지 않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군과 베트남 여인의 비극적인 사랑. 배경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을 뿐 지극히 통속적이고 신파극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얼마나 새로운가’보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 그런 점에서 <미스 사이공>은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생생한 감동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단, 감탄사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사까지도 노래로 이어지는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에서 몇몇 배우들의 대사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극의 마지막, <Sun & Moon>의 선율이 총소리와 함께 부서질 때 보는 나의 심장도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