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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 정열의 댄스홀을 가다
글·사진 심은하 2010-04-01

미리 가본 댄스 뮤지컬 <번 더 플로어> 오사카 공연

사진제공: 서울예술기획

“무대를 불태워!”라는 제목처럼 화려한 춤사위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시작된 인기를 업고 월드 투어 중인 댄스 뮤지컬 <번 더 플로어>. 국내에서도 4월2일부터 6일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여덟번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3년 만에 이루어지는 두 번째 한국 공연이다. 한국 상륙 직전, 오사카의 <번 더 플로어> 공연장을 찾았다. 꽃샘추위가 기승이던 서울과 달리 3월 중순 오사카는 봄바람이 살랑거렸다.

셸 위 댄스? 오사카 시내에 위치한 고세이 넨킨 가이칸 홀(Kosei Nenkin Kaikan Hall)은 평일 낮시간에도 관객으로 북새통이었다. 2002년 일본 초연시 오사카에서 티켓 오픈 다섯 시간 만에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앳된 얼굴의 학생부터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중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이 이 공연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객석 곳곳에서는 공연 시작 전부터 흐르는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 춤바람의 주인공은 바로 브로드웨이 댄스 뮤지컬 <번 더 플로어>.

13가지의 댄스 파노라마로 구성한 <번 더 플로어>는 1999년 영국에서 초연한 뒤 이미 30여개국에서 볼룸댄스의 묘미를 선보이며 세계 곳곳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호주산 작품이다. 공연 아이디어는 1997년 엘튼 존의 50번째 생일파티에서 따왔다. 파티를 즐기러 왔던 뮤지컬 프로듀서 할리 메드카프가 댄스 퍼포먼스의 강렬한 힘을 느끼고 전세계 댄서의 고수들을 불러모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댄스선수권대회 수상자들로 이루어진 드림팀이 선보이는 다양한 댄스 파노라마는 음악과 춤의 새로운 볼거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번 더 플로어>가 공연된 오사카 ‘고세이 넨킨 가이칸 홀’ 외관

공연장 내부. 중간 휴식시간이 되자 기념품을 사려는 관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월드 투어는 지난 1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그 첫막을 열었다. 성공적이었던 브로드웨이 공연에 이어 호주, 일본, 한국, 캐나다, 미국 플로리다 순으로 휴식없는 빡빡한 일정이 이어진다. 이번 월드 투어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안무.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폐막 행사의 안무를 맡아 이름을 알린 호주 출신의 안무가 제이슨 길키슨이 이번 월드 투어 프로그램의 연출을 담당해 화제가 되었다. 이전 공연에 비해 더욱 화려해지고 완성도가 높아진 조명과 의상, 무대세트는 그런 안무의 완성도를 뒷받침하는 조역들. 이번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Inspirations’, ‘Things That Swing’, ‘The Latin Quarter’ 그리고 ‘CODA-A Conclusion’ 등 총 4장으로 구성돼 2시간여 동안 공연장 전체를 후끈 달군다.

객석과 함께 “셸 위 댄스?”

막이 오르면 강한 비트의 리듬이 객석을 덮친다. “나랑 춤출래?” 어둠 속에서 움찔하는 순간 객석에 불이 켜지고,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온다. 조신하게 앉아 무대 위의 춤을 그저 구경하려 했던 관객이 당황할 상황이 이어진다. 어두운 객석에서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댄서들이 객석 사이사이에서 현란한 춤을 춘다. 무대에는 남녀 댄서가 짝을 이뤄 격렬하게 몸을 흔든다. 가려진 막이 올라가며 무대는 두배로 넓어진다. 우아한 은빛 의상을 입은 한쌍의 댄서가 느린 템포의 왈츠에 맞춰 춤을 춘다.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애잔한 느낌의 춤을 춘다. 이어 스윙재즈 시대가 무대 위에서 재현된다. 선곡부터 춤의 종류, 의상까지 전체적으로 리듬을 타게 구성되어 있어 느릿함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빠른 곡으로, 빠른 곡에 정신을 빼앗길 순간이면 느린 곡으로 그야말로 춤추듯 리듬감있는 공연이 이어진다. <번 더 플로어>의 가장 큰 강점은 객석과 함께 호흡한다는 점. 스윙을 추는 댄서들은 객석 통로까지 내려와 관객 앞에서 스텝을 밟는다. 다음 순간, 무대에는 카르멘과 투우사를 연상시키는 원색적인 의상과 그에 어울리는 화려한 댄스가 이어진다. 여자 댄서가 파소도블레, 플라멩코, 룸바, 탱고의 라틴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남자 댄서는 투우사가 된 듯 망토를 휘저으며 돌진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연출력이 빛나는 대목이었다. 마지막 피날레로 댄서들은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휘저으며 춤의 열기를 객석으로 쏟아낸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마지막, 객석에서 무대와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부르며 즐겼던 관객이라면 <번 더 플로어>를 놓치지 말 것. 시종일관 얌전하게 구경만 할 것 같던 일본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는 장관을 보니, 한국 공연에서의 엔딩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공연 마지막 순간, 객석이 플로어가 되고 공연장은 모두가 함께 즐기는 댄스홀이 되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댄서들과 보컬 미그 에이사(뒷줄 오른쪽)

프로듀서 할리 메드카프

두명의 남녀 보컬이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도 주목할 만하다. 그중 미그 에이사는 퀸의 노래 24곡을 이야기로 엮은 뮤지컬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공연차 2008년 초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두 사람의 노래와 춤은 ‘춤 공연’에 그칠 수도 있었던 <번 더 플로어>에 뮤지컬의 활기를 더한 큰 힘이기도 하다. 댄스 공연에 걸맞게 무대 뒤편에 봉고와 드럼을 비롯한 타악기 세션이 자리잡았다는 점은, 객석의 심장 고동과 공명하는 무대의 리듬을 표현하는 데 더없이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댄서들의 움직임이 이어질 때 객석에서 절로 발을 구르게 만드는 활력의 주인공이 바로 그 타악기 세션이니 말이다. 스윙재즈부터 60, 70년대 팝이나 솔 명곡, 흥겨운 로큰롤과 힙합/R&B와 라틴 팝에 이르기까지 2시간의 스테이지를 수놓은 다양한 음악은 댄스 뮤직의 역사를 압축한 듯하다.

다음 불살라 오를 무대는 한국

공연이 끝나고 인터뷰를 위해 만난 프로듀서 할리 메드카프(Harley Medcalf)는 이번 월드 투어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예전엔 볼룸댄스 하면 구시대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번 더 플로어>는 그런 편견을 깨고 볼룸댄스를 좀더 섹시하고 흥미로운 문화로 재창조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는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할머니의 보석 상자에서 빨간 보석을 꺼내 그것을 가공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에 비유하면서 “댄스, 음악, 무대장치 등 모든 방면에서 현재 공연팀의 기량은 최고”라고 강조했다. 댄스의 전통을 잇는 동시에 재해석해 보여주는 공연이기 때문에 지역별, 시대별로 조금씩 변형된 다양한 스타일의 볼룸댄스를 클래식 왈츠에서부터 모던 팝까지 다양한 음악들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메드카프의 “춤은 세계 공통어다”란 말처럼 공연 <번 더 플로어>를 즐기기 위한 예비지식은 불필요하다. 몸과 마음을 여는 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당신의 눈앞에 댄서가 나타나 손을 내밀어오면 망설임없이 그 손을 잡고 발을 움직일 것.

메드카프는 곧 있을 한국 공연에 대한 기대도 감추지 않았다. “보통 아시아 관객은 정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막이 올라가면 폭발적인 에너지가 미국이나 캐나다 못지않게 뜨겁더라.” 이 화끈한 춤바람이 한국에서도 계속될까. <번 더 플로어>는 4월2일부터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문의: 02-548-4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