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계가 원폭을 맞았다. 얼마 전 일본 도쿄도 당국이 ‘청소년건전육성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박정희 시절 모내기하는 소리가 대체 뭐냐고?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만화의 판매를 규제하겠다는 조례다. 이들이 내세우는 의도는 일본의 ‘로리물’ 문화를 깨끗하게 청소 좀 해보겠다는 거다. 로리물이란 18살 미만 미성년들을 성적 대상으로 그리는 만화를 말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을 잘 살펴보면 이게 단순히 로리물을 척결하겠다는 의지의 표상이 아니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단체를 한번 살펴보자. 도쿄도 청소년문제위원회, 기독교단체, 학부형회 등 극단적으로 편협한 보수주의 단체들이다. 이들의 공격 대상은 그저 로리물 만화만이 아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우리가 야오이물이라 부르는 BL물은 물론, 약간이라도 폭력과 성적 묘사가 들어간 문화 콘텐츠는 모조리 검열 대상이 된다.
일본의 만화가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일본 역사상 최고의 만화가들이 똘똘 뭉쳐 반대를 천명하고 나섰다. <내일의 죠>의 지바 데쓰야, <마징가>의 나가이 고, <란마 1/2>의 다카하시 루미코, <터치>의 아다치 미쓰루, <고르고 13>의 사이토 다카오, <GTO>의 후지사와 도오루는 물론, 고단샤, 슈에이샤, 쇼가쿠칸, 가도카와쇼텐 같은 출판사 역시 검열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물론이다. 일본의 지나치게 관대한 로리물 문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정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일부 극단적인 로리물의 규제만을 과녁으로 삼고 있다면 일본의 위대한 만화가들이 모두 들고 일어날 리 없었을 거다. ‘청소년건전육성조례 개정안’은 사실상 자유로운 문화검열권에 가깝다. 최소한의 원칙도 없는 스탈린적인 문화검열권 말이다.
일본의 망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브컬처들을 창조해왔다. 나가이 고 같은 선구자들이 검열에 맞서 싸워온 덕이다. 결국 이번에도 망가는 승리할 거다. 문화는 청소년의 건전한 미래를 걱정하는 지루한 노인들의 의지로 검열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만화가와 만화팬들에게는 위대한 위무가 있다. 사도를 물리치기 위해 에반게리온 탑승대로 달려가는 레이와 아스카의 흔들리는 가슴의 아름다움을 지킬 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