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면 생각나는 아티스트들을 떠올려보자. 데미언 허스트, 줄리언 오피, 트레이시 에민. 모두 짓궂거나 위트있거나 도발적인 예술가들이다. 팝적인 감수성으로 똘똘 뭉친 이들 영국 화단을 보고 있자면, 가끔 제인 오스틴과 영국식 정원의 미덕은 어디로 가버렸나 하는 의문이 든다. 현대와 고전을 잇는 연결고리가 없는 느낌이랄까.
대런 아몬드는 최첨단 미술의 홍수 속에서 영국의 고전적인 미덕을 꿋꿋이 지켜오고 있는 아티스트다. 은근하고 고요하고, 기품있는 그의 작품은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작품을 닮았다. 여백의 미를 살린다는 점에서 동양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2005년 <If I Had You>로 영국의 권위있는 미술상인 터너 프라이즈 후보에 오른 대런 아몬드는 확실히 도발과 파격으로 점철된 영국 화단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첫 한국 개인전인 이번 행사에서는 사진과 영상, 설치 등 30여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진작업 <Fullmoon> 시리즈에 주목할 것. 15분 이상의 노출을 통해 달빛으로 풍경을 촬영한 이 작품은 바라만 보아도 상쾌하다. 꽉 막힌 마음속 무언가가 풀리는 느낌이다. 그림으로 명상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