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본디 비치. 오전 11시2분.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이들. 이른 시간이지만 해변엔 인파가 가득하다. 잠깐 멍하니 그들을 바라본다. 같은 시각, 크로아티아의 젊음의 해변도시 스피릿 국제공항으로 간다. 활주로에 서 있는 비행기 한대. 저기서 곧 여행객들이 쏟아지겠지. 모나코 몬테카를로에 정박해 있는 요트로 눈길을 옮긴다. 내친김에 베네수엘라 아루바섬의 부쿠티비치에 들어서니 야자수들 사이로 오토바이 두대가 지나간다.
휴, 같은 시각. 여긴 마감이 한창인 공덕동 사무실. 시네마테크 공모제 취재에 열중인 후배의 전화통화 소리에 간신히 내 위치를 확인한다. 그러니 사무실에 앉아 전세계 각지의 저 어마어마한 이미지들을 한꺼번에 제공받을 수 있는 건 순전히 ‘Earth Cam’이라는 스마트폰의 어플 덕택이다. ‘Earth Cam’ 사용자는 전세계 각지에서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 동안.’ 매혹적인 설명대로라면 파리 에펠탑이 보이는 호텔 테라스의 웹캠을 찾고 거기에 얼굴을 들이민다면, 전세계 각지의 누군가가 나를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라이브창을 화면 한 가득 띄워놓고 있다가 두바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을지 누가 알겠나. 며칠 전 이집트 간 친구에게 안부차 피라미드 앞에서 손이라도 흔들라고 할걸 그랬다.
좀 판타스틱하면서도 오싹한 기분이 든다. 트위터가 만들어낸 엄청난 소통의 장처럼 경우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이 역시 활용하기에 따라 일종의 영상을 통한 소통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물론, 웹캠의 특성상 일방적인 훔쳐보기가 대부분이지만. 이 기괴한 전세계적 소통에 한번 눈길을 빼앗기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푸에르토리코와 베네수엘라, 네덜란드를 한꺼번에 손가락 한번 움직여 오가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도 없으니까. 지하철 바로 옆자리의 누군가와는 눈길도 마주치기 싫어하면서 이렇게 스마트폰 어플 놀이로 난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의 지금으로 간다. 웹캠 안에 담긴 실시간의 ‘진실’이 이쯤 되면 ‘가공된 세계’가 주는 매혹만큼 짜릿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