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보다 밖에서 노는 시간이 훨씬 길었던 시절에도 TV는 아이들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다. 애들이 좋아하는 거야 대개 활극류다. 모여서 TV 얘기를 하다보면 주인공들 중 누가 누가 센지 말다툼이 붙을 수밖에 없다. 슈퍼맨, 원더우먼, 6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같은 미국파에 마린보이, 황금박쥐, 사이보그 009, 유성가면 피터, 캐산 같은 일본파. 승자를 가릴 수 없는 입씨름이지만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었고 주먹다짐으로 번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2편이 국내에 출시되었다. 설마 싶겠지만 제목 그대로다. 할리우드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괴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에이리언> 시리즈의 ‘에일리언’(그러고보니 에일리언이 언제부터 고유명사 대접을 받았는지 모르겠다)과 아놀드 슈워제네거와의 외계인의 처절한 싸움이 인상적이었던 <프레데터>의 외계인 ‘프레데터’가 등장해서 한판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여기에 이 둘 모두와 싸워야 했던 미 해병대까지 끼어들어, 세 종족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인다.
어떻게 생각하면 단순하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안이한 발상에서 나온 기획이다. 하지만 일인칭 슈팅 게임만이 가지는 적절한 공포감과 수준 높은 게임 엔진으로 인한 사실적인 그래픽이 덧붙여져 제법 근사한 게임으로 완성되었다.
세 종족이 근본부터 다른 생명체들이다보니 싸우는 방식이 각각 다르다. 거기에 맞춰서 적절하게 적응하지 않으면 미션을 클리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에일리언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그 징그러운 알에서 깨어나면 벽에 발발 붙어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사람을 하나 잡아 얼굴에 달라붙어야 한다. 그 다음 역시 영화와 똑같이 일련의 불유쾌한 과정이 진행된다. 프레데터 역시 영화 그대로다. 사람의 체온을 추적하기 위해서 열추적 장치를 달아놓은 거나, 기념으로 사람 머리를 컬렉션하는 것까지 똑같다. 한술 더 떠서 사람 머리를 일정 개수 이상 모아야 업그레이드된 무기를 쓸 수 있다.
영화에서 봤던 그 지긋지긋한 괴물들을 직접 플레이하는 건 색다른 기분이다. 그리고 의외로 꽤 즐거운 경험이다. 언제 튀어나올까 두근두근했던 에일리언 역을 맡아 벽이나 환기구에 숨어 꼼짝 않고 기다린다. 공격은 단번에 실수없이, 절대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기회가 올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리는 인내를 익혀야 하지만, 움직여야 할 때는 절대 주저하지 않는 과감성도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이미 익숙한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하다보면 영화가 반대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이 게임이 재미있는 건 이 부분이다. 세 종족을 모두 플레이하려면 시간도 꽤나 걸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다보면 어렸을 때 애들하고 티격대던 게 떠오른다. 원더우먼의 올가미를 슈퍼맨이 끊을 수 있는지 없는지 핏대를 올리며 악을 쓰던 기억이 어제처럼 새롭다. 이게 과연 싸울 일인지, 싸워갖고 결판이 날 수 있을지, 이긴다고 뭐가 좋은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누가 더 잘 싸우는지에만 매달렸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2>는 재미있다. 그런데 하다보면 제일 잘 싸우는 놈이 좋은 놈이라고 여겼던 어렸을 때보다 별로 발전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건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머리 속에서만 나온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사회가 겹겹이 규정해놓은 규율과 원리를 어린 마음에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