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고양이가 있다. 회사 근처에 사는 길고양이다. 매일 저녁 녀석의 사료를 챙긴다. 기특하게도 고양이는 요 근래 가장 추웠다는 2009년 겨울도 거뜬히 넘겼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녀석이 사라졌다. 2주일 이상 잠적한 건 처음이었다. 녀석은 철거 공사판에서 살았다. 거기엔 차도 많고 포클레인도 많았다. 불길한 상상을 시작할 무렵, 고양이가 돌아왔다. 거처를 옮긴 뒤였다. 고양이는 뭔가가 달라져 있었다. 애교가 사라졌고, 손을 내밀자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공사장에서 무슨 일을 겪었음이 틀림없었다. 무너져내린 건물과 공사하는 풍경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나는 그제야 철거촌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한국은 파괴와 재생의 사이클이 그 어느 나라보다 재빠른 곳이다. 이 재빠름을 폭력으로 느끼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웬만한 사건이 아니고서야 그냥 듣고 흘려버릴 만큼 우리는 도시화에 수반되는 생성과 소멸에 무감해졌다. 설치작가 임민욱의 작업이 인상적인 건, (고양이가 내게 그랬듯) 관객으로 하여금 현대시대의 속도와 변화에 대한 긴장감을 일깨운다는 데에 있다. 그녀는 비디오, 퍼포먼스, 오브제 설치작업을 통해 개발주의 아래 삶의 흔적을 포착해왔다. 2005년작 <뉴타운 고스트>에서 재개발 지역이었던 영등포 로터리 주변을 누비며 공연하던 래퍼-드러머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았고, 2008년에는 첫 개인전 <점프 컷>으로 한국의 산업화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메시지만 넘쳐나는 것은 아니다. 소통 가능한 ‘통로’의 존재를 살얼음 낀 빙판에 비유하고(<통로>), 물과 기름의 마블링으로 대한민국 지도를 만드는 등(<더는 장마의 끝을 알리지 않기로>) 임민욱은 그 독창성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왔으며, 국내에서도 광주 비엔날레 입상(2006)이나 에르메스 미술상(2007)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3월5일부터 갤러리 플랜트에서 열리는 임민욱의 또 다른 개인전 <꼬리와 뿔>은 문제제기에서 나아가 화합의 희망을 얘기한다. 선풍기 날개를 막대기에 잔뜩 꽂아놓고 재개발 구역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에선 어떤 용기가 느껴진다. 이 파편화된 시대를 조각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응원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