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Bonnes Femmes 1960년 감독 클로드 샤브롤 출연 베르나데트 라퐁 <EBS> 12월16일(일) 낮 2시
클로드 샤브롤 영화처럼 당혹스런 경험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여느 누벨바그 감독들, 즉 고다르와 트뤼포, 로메르에 비해 클로드 샤브롤은 굉장한 다작의 경향을 보인다. 이제까지 총 50여편의 작품을 연출했으니 약 40여년 동안 매년 한편 이상 꾸준히 만든 셈이다. 샤브롤 감독 영화에서 공통의 특성을 살펴보면 놀라움은 배가된다. 히치콕 감독으로부터 영화적 세례를 받은 이 연출자는 오랜 시간 동안 (물론 전형적인 장르영화라곤 할 수 없지만) 스릴러물에 관한 끊임없는 관심을 피력해왔다. 살인과 죄의식의 모티브, 그리고 1950년대 미국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영화형식에 관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샤브롤 감독은 일관된 작품세계를 유지해온 편이다. 어느 평자가 지적했듯 “샤브롤을 매혹시킨 것은 죄의식과 정신이상, 폭력적인 열정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영화는 탐정영화보다는 할리우드 필름누아르에 구조적으로 가깝다”는 것이다. <착한 여자들>은 샤브롤 영화의 초기 영화 중에서 수작으로 거론할 만한 작품이다.
<착한 여자들>에선 어느 가전제품 상점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제인과 지네트, 리타 등이 그들. 마네킹처럼 아무 표정없이 상점 안에 우두커니 서 있다. 그러다 손님이 오면 작은 소리로 수근거린다. 그들의 흠을 잡고, 수다를 떠는 거다. 퇴근을 기다리던 이들은 시간이 되면 짐을 챙겨 거리로 나선다. 제인은 약혼자와 관계가 소홀한 틈을 타 다른 남성들과 데이트를 즐기고, 지네트는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리타는 앙리의 유혹에 넘어가 잠시 신데렐라가 되는 꿈에 젖는다.
<착한 여자들>은 공개 당시 프랑스 좌파 비평가들에게 호된 공격을 당했다. 이유는 “영화 속 노동계급이 긍정적으로 묘사되질 않았다”는 점이다. 이 지적은 일견 그럴듯한 구석이 있다. 영화에서 제인과 지네트 등의 여성들은 낮엔 상점에서 판매일을 하지만 낮시간의 그들에겐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시간을 죽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밤이 되면 달라진다. 여성들은 파리 시내를 쏘다니면서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고, 파티장을 기웃거리고 공연을 보며 즐긴다.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고집하는 거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은 <착한 여자들>에서 젊은 처녀들이 어떻게 정신적으로 붕괴해가는지를 추적해간다. 도덕의식이라곤 전무한 여성들은 곧 심리적 공백상태에 빠진다. 영화는 파리라는 도시를 집요하게 탐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둠에 싸인 도심 거리, 술집, 그리고 인파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하면서 샤브롤 감독은 마치 프랑스판 필름누아르를 찍으려는 듯 빛과 어둠의 세계를 양분하면서 기묘한 상징으로 스크린을 채워놓는다. <착한 여자들>은 샤브롤이 당시 지녔던 관심사, 다시 말해서 영화가 관객에게 심리적으로 어떤 경험을 선사하는지의 메커니즘을 연출자가 파악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공허한 표정의 여성이 쓸쓸하게 춤추는 마지막 장면은, 이 순진하되 어리석은 여성에 대한 경멸어린 시선을 요약하는 듯해 꽤 오싹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