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지수 ★★★★★ 몰입지수 ★★★★★
객석에 들어선 순간, 잡음 섞인 구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한 여인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노래는 물레질하는 아가씨의 사랑을 읊조린다. 나직이 그리고 구슬프게. 노래가 흐르는 어두침침한 무대 오른쪽에는 한 노파가 웅크리고 흔들의자에 앉아 있다.
막이 오르자 무대가 환해지면서 장을 봐온 딸 모린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엄마 매그는 분유를 자기 손으로 타먹은 것에 뿔이 난 상태다. 둘은 시작부터 으르렁댄다. 일흔이 되어가는 엄마 매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식의 인생을 소비하는 엄마다. 그런 엄마를 돌보는 건 마흔이 다 되도록 제대로 연애 한번 못해본 막내딸 모린이다. 가장 사랑해야 할 두 사람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매일을 전쟁같이 산다. “아마 엄마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영원히 거기 버티고 있을 거야. 날 괴롭히기 위해.”(모린) “난 절대 안 죽어. 일흔살이 돼서야 내 장례식을 치르게 될걸. 그때 스킨 냄새를 풍기며 네 허리에 팔을 두를 남자가 몇이나 있겠니?”(매그) 이렇듯 둘은 서로를 할퀴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 짧은 웃음을 짓는다.
아일랜드 리넨의 외딴 농가를 배경으로 배우 4명만 등장하는 연극 <뷰티퀸>은 단출하면서도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대단하다. 원작은 2007년 배우 최민식이 연극 무대 복귀작으로 선택한 <필로우맨>의 작가 마틴 맥도나의 처녀작이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추리소설 같은 맥락을 이어간다. 여기에 모린 역의 김선영, 매그 역의 홍경연의 연기력이 이야기를 더욱 팽팽하게 만든다.
연극 <뷰티퀸>은 모린과 매그 사이에 오가는 독설보다 더 독한 작품이다. “먹고살기 위해선 이 땅, 아일랜드를 떠나야 한다”는 모린을 리넨의 뷰티퀸이라고 부르는 사내 파토의 대사에서 암시하듯, 시대적 상황이 던지는 통증이 따갑다. 더불어 작가는 인간의 내면을 철저히 이기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보다 더한 원수지간이 없을 것 같은 모린과 매그는 너무 가깝기에 소중함을 잊고 사는 오늘날의 가족상이다. 또한 모린의 고향 리넨과 모린이 잠시 런던의 뒷골목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던 시절 아프리카 동료와의 에피소드는 힘없고 작은 민족의 설움이 느껴진다.
극의 마지막, 홀로 남은 모린은 낡은 도포를 두르고 흔들의자에 앉는다. 이때 물레질하는 아가씨, 그 노래가 들려온다. 모린은 그녀가 그토록 미워하던 엄마 매그와 그대로 닮았다. 그래서 연극 <뷰티퀸>은 더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 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