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봇 부자 관계는 햄릿에서 빌려왔다”
제작자 겸 늑대인간 연기한 베니치오 델 토로
-집에 늑대인간 피겨를 전시해놓을 만큼 <울프맨>의 오랜 팬이라고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니버설이 1940~50년대에 만든 호러영화들을 좋아했다. <드라큘라>를 TV로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것을 아직 잊지 못한다. 호러영화를 보면서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공포감을 그때 처음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보리스 카를로프, 론 채니 주니어 등이 출연한 작품들에 폭 빠져 지냈던 것 같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킹콩> <미라> 같은.
-당신은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원작과 비교했을 때 플롯에는 어떤 변화를 주었나. =기본 뼈대는 시나리오작가 앤드루 케빈워커가 만들었다. 데이비드 셸프가 최종 작업을 했고. 내가 관여한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원작의 이야기를 많이 바꾸지 않는 선에서 변화를 주었다. 시대 배경이라든지 주인공 로렌스와 아버지, 로렌스와 그웬과의 관계를 바꾸거나 좀더 비틀면서.
-1940년대 이야기가 2010년의 관객에게도 흥미로울 거라고 보는가. =그래서 원작에 없는 인물관계를 만들었다. 원작에서는 아버지의 비중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어두운 비밀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비뚤어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떠오르는 게 없나. 그렇다. 햄릿. 주인공이 복수심을 갖는 상대가 삼촌에서 아버지로 바뀌었지만, 탈봇 부자의 관계는 햄릿에서 왔다.
-그로테스크하고 괴기스런 비주얼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장면들을 찍을 때 당신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나. =내 아이디어는 이 작품의 배경을 산업혁명이 끝나가는 무렵으로 바꾸자는 것 정도였다.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차 가스등에 의지하지 않으면 한치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던 런던 거리의 불명확함은 당시가 기계문명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맹신이 공존하는 시대라는 것을 상징한다. 늑대인간 같은 괴물은 이런 시대에 특히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늑대인간을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나. =글쎄. 우리 집 개 바라보기. (웃음) 마스크를 쓰고 직접 연기해야 하니 고전 호러영화 속 괴물들을 연기한 대배우들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살폈다. 그중 보리스 카를로프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그는 완전 괴물 그 자체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처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배우의 노력 50%와 특수효과의 정교함이 50%가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주 열심히 봤다.
-앤서니 홉킨스, 에밀리 블런트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앤서니 홉킨스는 전설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제어하면서도 존재감을 표현할 수 있는 대단한 배우다. 에밀리 블런트는 영리하다. 그가 맡은 그웬이라는 역할은 이성과 본능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힘든 캐릭터였음에도 그가 연기를 너무 잘해줘서 나는 연기하기 편했던 것 같다.
-로렌스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방황하는 캐릭터로 보인다. =보름달이 뜨자 로렌스는 의식적으로 자신 안에 내재된 동물적 본성을 제어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은 번번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뒤에 늑대인간 로렌스가 ‘이성의 힘’으로 그웬을 인식하게 되는 장면이 관객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설 것 같다. 뭐, 어디까지나 내 바람이긴 하지만. (웃음)
“시시콜콜 설명했다면 공포심이 떨어졌을걸”
그웬 역의 에밀리 블런트
-호러영화를 좋아하나. =음…, 사실 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요즘의 호러영화들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낀다. 하지만 고전 호러영화들은 좋아한다. 이들 영화에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현상 자체도 흥미롭지만, 인간이 이런 어두운 힘을 어떻게 사용하고 제어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이야기 전개방식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나는 공포를 쉽게 느끼는 편이라서 가능하면 이런 것들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웃음)
-그럼 왜 <울프맨>에 출연했나. =왜 안되나? 앤서니 홉킨스, 베니치오 델 토로 같은 훌륭한 배우들과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향한 그들의 철학도 가까이서 엿볼 수 있고. 사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즐겁게 작업한 것도 처음이다.
-당신이 출연한 <울프맨>은 봤나. =정말 무서웠다. 안 그런가. (웃음)
-하지만 페이스 완급조절 면에서는 다소 실패한 느낌도 든다. =원본 스크립트 자체는 훌륭했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우리는 인물과 인물 사이에 ‘빈 공간’을 삽입해 공포심과 긴장감을 만들어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나와 베니치오가 함께하는 장면들이 많이 삭제된 이유다. 후반부에 들어 영화가 다소 급하게 진행되는 듯한 느낌은 아마 이런 빈공간의 영향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야기의 개연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음에도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은 이런 빈공간에서 발생하는 모호함(ambiguity)과 불확실성이 또 다른 공포감을 창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시콜콜 전부 설명했다면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본다.
-그웬은 영화를 시작하고 끝내는 열쇠를 쥐고 있는 다소 복잡한 캐릭터다. =그웬 자체보다는 그녀와 로렌스의 관계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내가 동생의 약혼녀니, 우리는 금기시되는 관계다. 그러므로 우리 관계에 어떤 진정성을 넣으려면 감정선이 아주 느리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생각보다 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베니치오 델 토로와의 작업은 어땠나. =그는 정말 천재다.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그는 그저 대본에 쓰인 대사를 읽었을 뿐인데, 나는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특징이나 당시 시대 배경 등이 저절로 그려졌다. 그는 창의적이고 또 용감하다. 그는 나의 완벽한 롤모델이다.
-빅토리아시대에 특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내가 <영 빅토리아>에 출연하면서 이 시대에 대해 많이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빅토리아 여왕에 관한 여러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그게 이번 작품에도 도움이 된 것 같다. 나는 시대극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완벽한 세트나 코스튬보다 배우가 그 시대를 얼마나 이해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작품들에 들어가기 전에는 시대와 관련한 책들을 가능한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독서광처럼 들린다. =뭐, 일종의. 하지만 독서‘광’까지는 아니다. 영화 촬영에 들어가면 음악 듣기를 더 좋아한다. <울프맨> 촬영 중에는 어둡고 강렬한 정서를 가진 패티 스미스의 노래를 많이 들은 것 같다. 롤링 스톤스와 비틀스의 노래들도 자주 들었다.
-여배우로서 당신의 야망은 무엇인가. =글쎄. 매사에 열심히 도전하면서 성숙하는 것? 여기서 도전이란 지금까지 내가 해보지 않은 역할일 수도 있고, 촬영장에서 맺는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다양하다.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내게 닥칠 여러 어려움을 피하거나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이거 너무 진부한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