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서 2010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연쇄 추돌사고처럼 안 좋은 일들이 연이어 터졌다.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다 팬에 손가락이 꼈다. 피가 뚝뚝 떨어졌고 빈혈로 쓰러질 뻔했다. 그것은 무려 전치 3주짜리 부상이었다(물론 자체 판정이다). 3주 동안 ET처럼 왼쪽 집게손가락을 쭉 뻗고 다녔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다음날엔 보일러가 고장났다. 한파가 급습했던 때다. 손가락을 돌보느라 보일러를 돌보지 못했다. 꽁꽁 언 보일러를 녹이는 데 들어갈 비용을 생각하니 애간장도 녹았다. 그러고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목이 아프더니 기침이 시작됐고 코가 막혔다. 각티슈 반통을 쓰고 났더니 코가 헐었다. 그런 없어 보이는 몰골로 집 밖에 나갈 수 없었다. 마침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이 기회에 회사에서 던져준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었다. 한국 배우의 프로필을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단순하지만 하다보면 욕이 나오는 그런 일이었다. 3박4일간 일에만 매달렸다. 마감하는 순간 기쁨의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누군가와 이 기쁨을 함께하고파 거울을 보았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 생활 일주일째 접어든 척 놀랜드(톰 행크스)가 거기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손가락도 꽤 아물었고, 감기도 나았고, 마감도 끝냈다. 홀가분하게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극장에서 회사 동기를 만났는데 평소와 달리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너, 그거 들었냐? 배우사전 무산됐어.” 두둥. 2010년엔 다 잘된다고 했던 사주카페 도사님의 얘기는 무엇이었나. 재물 운도 있어 삼대가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산다고 했는데, 대체 어디에 발을 뻗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이 돼버렸다. 우울했다. 그리고 또 며칠이 흘렀다. 편집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름을 받고 회사에 갔더니 사람들이 모두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하고 반이 지났다. 나는 지금 오픈칼럼을 쓴다. 객원기자로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이렇게 오픈칼럼을 쓴다. 울트라 신하고 와이드한 LED 모니터 노트북을 톡톡 두드리며. 그러니까 요는 좋은 일은 예고없이 찾아온다는 거다. 날마다 우울함에 치를 떨고, 밤마다 외로움에 울음을 삼킬 때, 그래서 더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없을 것 같을 때에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얘기다.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10년 만에 다시 희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