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대여점에 오는 고객 중 나의 관심을 끄는 이가 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남자아이인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고르는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만화영화가 아닌 영화에 관심이 부쩍 생겼는지 영화를 보는 양이 많아졌다.
며칠 전엔 <컷스로트 아일랜드>를 반납하면서 <델마와 루이스>를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너, 지나 데이비스 좋아하는구나?” 했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어떻게 아셨어요?”라는 것이다. “응, 다 아는 수가 있어. 근데, 그 영화는 연소자 관람불가라서 빌려줄 수 없어”라고 하자 “엄마가 봐도 괜찮다고 했어요” 하는 것이다. “그래도 안 돼. 네가 이해하긴 어려울 거야. 너 페미니즘이 뭔지나 알아?” 그 꼬마는 말문이 막혔는지, 그냥 돌아갔다.
다음날, 그 꼬마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들어와선 “저, 이제 페미니즘이 뭔지 알아요. 그러니까 빌려주세요”, “그래도 안 돼. 좀더 크면 빌려줄게”, “그럼,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빌려줄 수 있나요?”, “그건 더 안돼. 술 먹다가 자살하는 내용이라서”.
나는 요즘 그 꼬마와의 대화가 재미있다. 꼬마 역시, 나의 영화지식이 얼마나 되는지 감히 나에게 테스트를 하는데 재미를 붙인데다가 나와의 대화 중에 ‘그런 것도 아느냐?’는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러나 그의 호기심어린 그 태도는 볼수록 기특하기만 하다. 매일매일 새로운 영화를 보면서 그의 호기심과 열정은 더욱 커갈 것이다. 그와의 대화 중에 ‘이제 봐도 되겠다’ 싶으면, 아무리 연소자 관람불가라도 보여줄 의향이 있다. 혹시 영화천재일지 모르지 않는가? 이주현/ 비디오카페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