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제목이 길어요?” 그렇게 물어봤더랬다. 그 제목엔 수식이 많았다. 시의 한 구절을 뚝 떼온 것 같았다. 세개의 명사, 하나의 동사, 또 하나의 형용사로 이루어진, 열 글자가 훌쩍 넘는 긴 문장. 그것이 L의 영화제목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직전에 만든 단편영화 또한 열다섯 글자에 육박하는 화려한 제목을 자랑했다. 이 작명의 법칙이 반복되는 것이라면, 거기엔 필시 사연이 있으리라. L은 말했다. 워낙 설명없고 대사없는 영화를 만들다 보니 제목이라도 길게 지어야 덜 허전할 것 같다고. 수습기자 시절 인터뷰차 만났던 수습감독의 영화 이야기다.
1년간 편집팀에서 일하면서 이 에피소드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감독이 이 기분이었던가. 제목을 뽑을 때마다 좀더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베수비오 화산처럼 흘러넘치는 거다. 기사의 주제를 압축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한 명사, 형용사, 부사들이 나약한 마음속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렇게 이 단어, 저 단어를 오가다가 ‘유혹하는 에디터’ K편집장님의 “영엽, 아직이야?”라는 말에 오그라든 마음으로 편집을 마치곤 했다. 그렇게 넘어간 ‘테러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란 불안불안한 제목은 데스크를 거쳐 ‘테러는 테러, 영화는 영화’라는 야무진 제목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여 가슴 쓸어내리는 날들이 많았지만, 생각해보면 즐거운 기억도 많다. 내가 뽑은 기사 제목이 홈페이지의 ‘많이 본 기사’ 1위에 랭크될 때, 취재팀 선배들이 기사 괜찮게 나온 것 같다고 얘기할 때, 정훈이 만화가에게 마감 에피소드를 직접 들을 때, 독자모델분이 이제부터 잡지 더 열심히 보겠다고 말해줄 때. 그중에서 가장 짜릿했던 건 기사 마감을 ‘재촉하는’ 일이었다(“마감, 얼마나 남으셨어요?”라고 물을 때의 길티한 쾌감이란…).
올해부터 다시 마감에 쫓기는 사람이 되었다. 이젠 단어와 씨름하기보다 현장에서 ‘뻗치기’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그럼에도 ‘편집’증적인 습관은 계속된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본 띄어쓰기 잘못된 광고를 머릿속으로 새로 고침하고 있을 때, 그리고 지금 막 이 글의 원고량이 1.5매 넘쳤다는 걸 확인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