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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다시 출발선에 서서
장미 2010-01-15

서른살이 되면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어. 20대 초반에 자주 했던 말이다. 대학 졸업한 뒤 회사에 투신해서는 노후 자금을 걱정하면서 자리 보전에 힘쓰는 판에 박힌 인생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품은 생각이었다. 월급쟁이로 산 지 어언 6여년에 접어드는 지금에 와서도, 약간은 그렇다. 아직 철이 없는 탓인데, 어쨌든 그 다짐 중에서 퇴사 부분만은 현실화되고 말았다. 내 나이 스물아홉. 2010년에 서른의 출발선을 끊는 동시에 4여년간 거주하다시피한 <씨네21>과 작별할 예정이다. 사직서에 퇴사일로 기록한 날짜가 12월31일이라니 참으로 신기한 우연이다.

돌이켜보면,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워낙 드라마틱한 성격인지라 사고도 좀 쳤고, 화도 많이 냈고, 꽤 자주 울었다. 마감 때마다 ‘지겨워’를 외쳤지만 진심으로 지루해한 적은 거의 없었다. 내 인간성과 지식의 바닥을 목격하면서도 대개 조금씩 전진하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옆자리에 앉았던 선배는 마감도 안 하면 하고 싶어진다고 장담했지만, 나는 그보다 간혹 마감이 환기시키는 사소한 디테일들이 그립지 않을까 싶다. 무릎이 시릴 만큼 추운 사무실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완소 아이템을 발견한 D 선배의 외침, 달달거리는 소음을 쏟아내던 K 선배의 온풍기, 새벽의 수다나 수요일 자정쯤이면 어김없이 찾아들던, 끝내 초연할 수 없었던 극도의 초조함까지.

이상하게도 퇴사를 결정하고 나니, 세상 모두가 나를 향해 합창하는 듯 보였다. 내가 본 영화와, 인터뷰한 사람과, 읽어야 했던 모든 자료들조차. <줄리 & 줄리아>의 줄리아 차일드는 꿈을 이루는 데 늦은 나이는 없음을 입증했고, 한 신인배우는 소망과 일치한 삶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클로드 를르슈 감독은 원하는 걸 배우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혀야 한다고 조언했고, 드루 배리모어의 연출작 <위핏>은 사춘기를 앓는 모든 여자들에게 때론 무자비하게(!) 당신의 길을 개척하라고 독려했다. 맞다, 여전히 철이 없어도 괜찮은 나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4여년의 내 여정이 아무쪼록 소소하게나마 재미있는 성장영화 같았기를. 우리 모두 다음 영화에서 다른 역할로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