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알게 모르게 인기를 끌었던 책 <앗 뜨거워>의 주인공 마리오 바탈리가 실제 텔레비전에 등장해서 책에 묘사된 그 거대한 덩치를 흔들며 요리를 한다면? 바로 <철인요리왕>(Iron Chef)에서 만날 수 있다. 붉은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유아틱한 칠부바지에 이탈리아산 빨간 요리화를 신은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묘한 포스가 느껴진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일본식 등 알아주는 미국 요리계의 거장들이 등장하는 뜨끈뜨끈한- 높은 열량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이다. 이들에게 도전자가 나와 일대일 ‘맞장을 뜬다. 격투기라도 할 만한 덩치 좋은 사내들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요리로 결투를 한다. 제한시간 내에 주어진 재료로 누가 더 맛있게(필자가 보기에는 ‘누가 더 칼로리가 높게’) 만드냐가 관건이다. 마치 주방 한구석을 훔쳐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활력이 넘치는 스튜디오를 꾸몄다. 출연 요리사의 실제 어시스트들이 마구 칼질을 해대고, 믹서를 돌린다. 뜨거운 주방 열기가 안방에도 그대로 배달된다.
역시 미국 프로그램답다. 요리사 한두명이 소박하게 오밀조밀 요리를 해나가는 유럽식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서너명의 보조 요리사들이 실제 주방 같은 어마어마한 장비를 다루며 요리를 ‘생산’하듯 한다. 장비들은 왜 그리도 크고 힘이 좋은지 마치 군용 ‘지엠시’ 같은 파워를 보인다(돼지 한 마리라도 통째로 갈아버릴 것 같다). 요리조차도 에너지 과소비다. 에너지만 그런 건 아니다. 프랑스식, 이탈리아식, 그리스식의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데 하나같이 원래의 그 나라 요리가 가진 소박하고 섬세한 정서와 스타일은 없다. 나는 그렇게 살찌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그리스나 이탈리아 요리는 처음 봤다. 글쎄, 출연자들이 그 나라 요리라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게다가 접시당 칼로리가 엄청나다. 코스로 먹게끔 전채부터 메인, 디저트까지 만들어 경쟁하는데 한 접시만 먹어도 성인 일일권장량이 될 것 같다(하긴, 미국의 한 패스트푸드점의 디저트 1인분은 자그마치 3천 칼로리가 넘는 것도 있단다). 에너지처럼 칼로리도 과소비다. 아하, 저렇게들 드시니 비만 왕국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요리는 고급이되, ‘웰빙’에 대한 성찰 따위는 없다. 철학? 그런 건 옥수수기름에 튀겨버리라고 그래, 이런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다. 뭐, 신나는 요리 쇼라니까 거창하게 철학 따위가 등장하는 건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라고 해도 이건 좀 심하다. 누군가가 이럴 것이다. “쳇, 요리 프로그램조차도 철학 교수들이 나와서 토론해야 하겠수? 그냥 맛있으면 되는 거지.” 틀린 말씀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맛있으면 그만’에 지구가 다 멍들어서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 아니겠수. 이젠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에서 ‘적은 에너지로 지구를 보존하면서 맛있게’ 먹을까를 고민하는 시대로 변했다. 이건, 이미 우리 생존의 문제니까 말이다.
조리법에 성찰 같은 건 없어, 라고 생각한다면 출연하는 요리사들의 화려한 기술은 볼 만한 눈요깃거리다. 날고 기는 근·현대 요리사들이 이룩한 기술은 죄다 나온다고 봐도 좋다. 저온조리법- 형태를 잃지 않으면서 재료를 부드럽고 맛있게 익히는 기술 sous vide 조리법- 은 물론, 갈고 튀기고 찌는 놀라운 기술들이 죄다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