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올해 발간된 정현종 시인의 시선집에서, 그가 가고 싶다던 ‘섬’을 드디어 보았다. 시와 함께 시인의 그림을 곁들이는 컨셉으로 발간된 시집이었다. 정현종 시인은 짙게 푸르른 바다 위에 오롯이 뜬 회색 산을 그렸다. 유화로 표현된 시인의 마음속 섬은 그의 문장처럼 담백하지만 여운이 길었다.
시인이 심상을 다른 종류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건 의미심장하다. 시가 극도로 정제된 언어예술인 만큼 시인이 다른 장르의 예술에 도전한다면 그 작품 역시 단조롭지만 풍부한 의미를 지닐 가능성이 크다. 정현종 시인의 그림이 그랬고, 지금 소개할 박노해 시인의 사진이 또 그렇다. 시집 <노동의 새벽>(1984)과 <참된 시작>(1993) 이래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던 박노해 시인은 2000년대 들어 펜과 함께 카메라를 들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뒤 카메라를 들고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비며 반전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첫 사진전 <라 광야>에는 박노해의 중동 현장 10년이 고스란히 담겼다. 전사한 형의 사진을 앞에 두고 무릎을 꿇은 형제, 고향에서 쫓겨나 광야를 달리는 팔레스타인 여인의 모습이 사진 속에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임에도 그 속의 의미를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작품들이다. 이게 바로 시인이 의도한 효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