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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뒤] 인생을 압축한 그 안무
김성훈 2009-12-31

발레 <호두까기 인형>/공연 종료/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첫 경험이었다. 흥분보다는 긴장이 앞서더라. 태어나서 처음 본 발레 공연 <호두까기 인형>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나는 남들 다 봤다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도 끝까지 못 본, 순수한 의미의 발레 첫 경험자다. 그래서 다 아는 이야기인데다 어린이 관객의 호응도가 높은 발레 공연이라는 걸 알면서도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33년 동안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을 이끈 솜씨답게,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나의 발레 공포증을 눈 녹이듯 누그러뜨렸다.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친근한 안무를 앞세워 관객을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마리네 집으로 친절하게 안내했다.

휙휙 돌고 팔짝 뛰고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동작들이 무대 위에 내리는 눈과 함께 화려하게 펼쳐진다. 줄거리와 상관없는 2막의 ‘디베르티스망’에서 과자요정들이 선보이는 각종 춤은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이 떠오를 정도로 다양하고, 왕자와 마리의 2인무는 우아하고도 로맨틱하다. 심지어 왕자와 생쥐왕의 대결장면은 전쟁이 아닌 연희의 한 풍경으로 느껴졌다. 이처럼 휘황찬란한 장면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곱씹은 장면은 따로 있다. 1막과 2막이 시작하기 전, 무용수들이 커튼 내린 무대 앞을 걸어가는 장면이 바로 그것. 평범한 걸음걸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마다 다른 리듬의 걸음과 공중 동작은 각자의 인생을 보여주는 듯했다. 누구는 일정한 속도로, 또 다른 누구는 불규칙적인 속도로 살아간다고 할까. 특히 무용수들이 공중에 뛰어오르는 몸짓은 현재의 시공간을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으로 이동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려는 것처럼.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올해로 열 번째 공연으로, 크리스마스에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매년 같은 내용을 비슷하게 공연하는데도 연례행사처럼 챙겨보는 관객이 많다고 한다. 만족도를 생각하건대 나 역시 내년 12월이 돌아오면 예매 버튼을 클릭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