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라이브 섹션 추천 지수 ★★★★ 애상 지수 ★★★★★
너무 잘 알려진 사람의 단점은 쉽게 진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이클 잭슨이나 마릴린 먼로, 안젤리나 졸리 같은 사람들. 그들이 진부하다는 것이 아니라 대명사화된 그들의 이름이 진부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앤디 워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현대미술을 말할 때마다 툭하면 언급되는 그의 이름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캠벨 수프나 실크 스크린 기법도 이제는 다소 진부하다. 재미있는 점은 그럼에도 어디선가 워홀의 이름이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볼 만큼 봤다고 생각해도 막상 전시회가 열린다면 주목하게 되고 기어이 찾아가서 보게 된다. 이게 바로 셀레브리티의 힘인가?
앤디 워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이하 <위대한 세계전>)으로, 워홀의 사망 20주기를 기념해 리움에서 열었던 회고전 이후 2년 만의 대규모 전시다. 앞선 전시와 웬만큼의 기간을 두고 열리는 전시의 장점은 그만큼 업데이트된 콘텐츠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위대한 세계전> 역시 앤디 워홀의 주요작은 물론이고 새로운 발굴작이나 이전 전시에서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을 공들여 선정한 흔적이 엿보인다. 워홀 말년의 추상 작업을 모은 ‘추상 이미지’ 섹션이나 대중음악에 관련된 워홀의 작품을 모은 ‘워홀 라이브’ 섹션이 그 예다. ‘추상 이미지’ 섹션에서는 빛과 어둠의 반복을 보여주는 <회상(시대 정신 연작)> 시리즈와 물감 칠한 캔버스에 방뇨한 뒤 산화과정을 거쳐 완성된 파격작 <산화> 등이 소개된다. ‘워홀 라이브’에서는 워홀이 직접 프로듀서를 맡았던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연주장면이 상영된다. 귀청을 찢을 듯한 소음과 디스코텍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조명,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영상 등 워홀이 직접 연출한 사이키델릭한 무대가 펼쳐진다.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워홀의 작품으로는 200여점이 소개된다. 코카콜라, 캠벨 수프 등을 소재로 한 드로잉, 가발이나 선글라스로 위장한 그의 자화상, <해골> <앰뷸런스 사고> <전기 의자> 등 죽음을 반복 배치한 작품이 그들이다. 특히 당대를 풍미했던 유명인 110여명의 인물화가 볼거리다. 마이클 잭슨, 마릴린 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재클린 케네디, 프란츠 카프카…. 그냥 이 리스트로 20세기 위인전을 만들어도 될 정도다. 그저 이 리스트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이 점점 지워진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인물화를 차례로 들여다보다가, 한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을 때의 슬픔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