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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영화가 원작을 보완해 주더라
주성철 사진 오계옥 2009-12-31

<걸프렌즈>의 원작소설 쓴 이홍 작가

조심스레 5분 늦겠다고 연락이 와서는 제 시각에 도착했다. 그렇게 이홍 작가는 첫 만남부터 대략 어떤 ‘디테일’을 지닌 사람일지 짐작이 갔다. <걸프렌즈>의 세 주인공 중 누구와 특별히 닮았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마치 그들 모두를 보듬고 있는 언니처럼 사려 깊고 야무지며 차분한 사람이었다.

한 남자를 공유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 <걸프렌즈>는 이홍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원작 자체도 여성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거기에 <싱글즈>(2003) 노혜영 작가의 각색을 거치면서 더 톡톡 튀는 작품으로 완성됐다. 2007년 <걸프렌즈>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고 이제 막 들뜬 마음으로 두 번째 장편 <성탄 피크닉>을 내놓은 이홍 작가를 만났다.

-<걸프렌즈>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던 날이 기억나나. =작품을 내고 기다리면서 투고자들은 대략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있다. 그런데 예상한 날로부터 한참 지났는데도 연락이 안 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다 잊고 새 마음으로 살려고 휴대폰도 바꾸고 번호도 바꿨다. (웃음) 그러고는 광화문 언저리의 점집에 들렀는데 절대 안된다고 하더라. 등단은 꿈도 못 꿀 거란 생각에 차를 몰아 돌아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데 마침 집에서 전화가 와서는 웬 출판사에서 사람이 오셨다는 거다. 내가 당선됐는데 전화도 안되고 또 필명이다 보니 수소문하기도 어려워서 결국 출신학교로 문의해 어렵사리 찾아온 거였다. 그런 일들을 하루에 다 겪고 보니 당선 소식을 듣고도 오랜 시간 진정이 안되더라.

-직접 각색을 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나. =사실 영화에 문외한이라. (웃음) 영화나 소설이나 이야기의 욕망 충족이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가졌지만 장르적 특성이 다르니까 내 분야가 아닌 철저히 관객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노혜영 작가님에 대한 믿음도 당연히 있었고 영화로 더 어필할 만한 지점을 많이 발굴해주실 것 같았다.

-원작에 대한 판권 제의가 이어지면서 영화와 드라마 사이에서 고민했던 걸로 안다. 가령 맥도널드와 버거킹에 관한 에피소드는 재밌지만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압축의 문제 때문에 사라진 것 같고, 중요하게 등장하는 카섹스에 대한 묘사는 영화이기에 살릴 수 있었던 에피소드 같다. =맥도널드와 버거킹 장면은 다들 살리고 싶어 했는데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아닌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묘사 수위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을은 카섹스의 계절’같은 대목이 빠진 게 좀 아쉽다. 또 노혜영 작가에게 감탄한 건 현실에서 여자들끼리 모여 그저 자기들끼리 “너 예뻐”, “아냐 너도 예뻐” 그런 얘기들을 주고받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걸 놀이터 장면으로 섬세하게 잘 표현하셨더라.

-여자감독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나. =오히려 남자감독인 게 나았다는 생각이다. 사실 원작에서 남자주인공 ‘진호’ 캐릭터는 미미한 편이었는데 강석범 감독님이 잘 도드라지게 해주셨다. 코피 흘리면서 징징대는 장면들이 참 귀엽던데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디테일들이 잘 살아 있었다. 원작에서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 찜찜하던 것이 영화로 해결된 거다.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작품들인가. =<디 아워스>가 무척 좋았다. 스무번 넘게 봤다. 볼 때마다 다른 지점에서 눈물이 나고,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서로 다른 여자들이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삶이 얼마나 지독한지, 그런 한편으로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술처럼 깨닫게 해줬다.

-단편 <50번 도로의 룸미러>를 보면서 <걸프렌즈>로부터 달라진 모습을 봤다. 신작 <성탄 피크닉>은 어떤가. =추리 기법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50번 도로의 룸미러>와 <성탄 피크닉>은 유사하다. 살인사건에 휘말린 세 남매의 이야기인데 누가 살인을 했는지, 형식이 어떤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탐구하려 했다. <걸프렌즈>가 내 또래인 스물아홉 여자들의 이야기였다면 이제 나도 서른이 넘었고 그런 변화들이 반영됐을 거다. 반응이 어떨지 조마조마하다. 표지가 너무 만화 같지 않은지 걱정이 들기도 하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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