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어필지수 ★ 엉뚱 지수 ★★★★★
드디어 때가 왔다. 거리에는 캐럴이 울려퍼지고 TV에선 온갖 특집 방송이 편성되는 시즌, 옆구리가 시리다고 투덜대는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따위 별거 없다고 약 올리는 커플들의 시간 말이다. 11월 말부터 12월 초에는 여전히 캐럴 음반이, 그야말로 쏟아진다. 여기서 밥 딜런의 ≪Christmas In The Heart≫를 소개하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이 앨범은 10월에 발매되었다. 2009년에 가장 일찍 튀어나온 캐럴 앨범인데, 밥 딜런 음악 인생 47년 만의 첫 캐럴이자 34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물론 그래서 이 앨범이 대단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실 그리 대단하지도 않다. 여기서 이걸 소개하는 건 ‘이상하지만 좋기 때문’이다.
앨범엔 모두 15곡이 있다. <Here Comes Santa Claus>를 비롯해 <Winter Wonderland>와 <Little Drummer Boy> <Silver Bells> 같은 크리스마스 클래식을 비롯해 <The Christmas Blues>나 <I’ll Be Home For Christmas> 같은 블루스 넘버들도 있다. 신곡(창작 캐럴)인 <Must Be Santa>도 있다. 캐럴답게 혼성 합창단의 코러스도 아름답고 우아하다. 하지만 이 곡들이 재밌는 건 밥 딜런의 보컬 때문이다. 걸걸하고 불안하다. 이 노쇠한 블루스 싱어는 당장 가래를 토할 것 같은 목소리로 “산타클로스 우리 마을 오시네”라고 노래한다. 맙소사, 광팬이 아니라면 듣자마자 피식 웃어버릴 것 같은데 신곡인 <Must Be Santa>는 한술 더 뜬다. 이 시끌벅적한 폴카는 정신 산만한 크리스마스 홈파티 뮤직비디오와 세트다. 젊은이들의 흥청망청 파티 복판에 산타 모자를 쓴 비쩍 마른 노친네가 술병을 들고 어기적거리면서 춤도 춘다! 10대 시절이 그리운 건지, 10대 시절에 못한 걸 이제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물론 노래는 흥겹다. 신난다. 비디오가 괴상하단 얘기다.
그런데 진짜로 웃긴 건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우울한 크리스마스 캐럴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엔 괜찮은 캐럴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좋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앨범은 ‘이상하지만 좋은 캐럴 음반’이 돼버렸다. 수익이 세계의 기아문제를 위해 쓰인다는 취지와도 상관없이 좋다. 단, 이건 분명 30대 이상을 위한 정서다. 20대, 그것도 20대 초반에 밥 딜런의 캐럴 같은 걸 좋아하면 좀 곤란하다. 음악 말고 좋은 게 훨씬 더 많은(이를테면 데이트) 시절이니까. 만약 당신이 스물 몇살이라면 이 페이지는 형누나삼촌고모이모들에게 던져버리고 당장 데이트 약속이나 잡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