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성적으로 매사를 꼼꼼히 재단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냥 느낌으로, 감으로 뭔가를 결정하는 편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편이고 인생은 이미 운명지어져 있다는 주장에 심정적으로 동감하는 쪽이다. 그래서 타로 카드점도 재미삼아 가끔 보고(진짜 잘 맞아서 깜짝 놀란 적이 많다!), 잡지에 나오는 별자리 운세도 챙겨 읽고(너무 광범위해서 큰 의미를 두진 않고 그냥 재미삼아 읽는 정도), 용한 점집이 내 레이더망에 잡히면 친구를 꼬여 보러가기도 했다. 최근에는 바쁘기도 하고 그렇게 궁금한 일도 없고 너무나 치명적인 얘기를 듣게 될까봐 슬슬 무서워지는 나이인지라 몇년째 발길을 끊었지만 누가 “어디가 용하다더라” 그러면 아직도 귀가 솔깃해져서는 얼른 휴대폰을 열어 일단 저장해놓고 본다.
용한 점집은 전파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마치 바이러스 퍼지듯 금세 주변에 알려지는 특징이 있다. 피라미드 조직이 그 세력을 확장하듯이 말이다. 재미삼아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 같은 인생에서 지뢰밭을 밟지 않기 위해, 지난한 연애사에 종지부를 찍고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 시험을 잘 치기 위해, 안전하고 승률 높은 투자를 하기 위해 등등등 실로 각양각색의 이유가 우리를 용한 그분 앞으로 안내하는 것이리라.
개인도 이러한데 한편에 수십억, 수백억원의 거대 자본을 투입하고 지난한 세월을 거쳐 제작되는 영화의 탄생 스토리에 얽힌 사연들은 오죽 많을까. 몇년씩 준비하다 엎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한 영화계는 그래서인지 이쪽과 얽힌 얘기들도 많다. 촬영 전에 무사 촬영과 흥행 대박을 기원하며 고사를 지내는 것은 기본이고 제작사랑 감독의 궁합을 맞춰보기도 하고, 영화제목은 이왕이면 홀수가 흥행 확률이 높다느니, 언제 개봉하면 좋다는 점쟁이 말을 듣고 그대로 했더니 대박이 났다느니, 어떤 배우는 올 한해 운이 좋아서 하는 영화마다 잘된다는 점쾌가 나와서 그 영화는 잘될 거라느니… 하다못해 촬영 중에 귀신을 보면 대박난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흥행몰이에 성공한 영화는 시나리오가 좋았거나, 배우가 혼신의 열연을 했거나, 훌륭한 연출력으로 감독이 승부를 냈거나, 그도 아니면 대중의 마음을 잘 파악한 기획력이 돋보였거나 등의 어떤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으로는 운이 따라줘야 한다는 데는 이견을 없을 거다. 운은 흥행의 어떤 필수조건인 것 같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다.
이번호 특집도 그 내용이지만 내년 개봉을 목표를 준비되고 있는 영화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장기불황의 경제난 속에서 그동안 위축되었던 영화계가 나름의 해법을 찾아들고 이제 다시 재도약을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영화들이 다 흥행 대박의 운을 받아서 관객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씨네21>에게도 관객의 그 사랑을 함께 나눠가지는 행운이 찾아온다면 어떨까 잠시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