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카뱅,
얼마 전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약속도 비우고, 사람도 비우고, 생각도 비우려 애썼던 3일이었다. 그때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비울 수 없는 한 가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게 뭐냐면 바로 ‘위’다. 조금 황당하지만 당시엔 정말 심각하고 진지하게 이 깨달음을 놀라워했다. 아무리 생활을 가볍고 산뜻하게 만들어도, 내 위는 하루 세끼 꼬박꼬박 가득 채워지길 원했다. (음식)만들기-먹기-(그릇)씻기의 과정을 기계적으로 3일 아홉번 반복하면서 나는 음식이 내게 조용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보내오던 메시지를 포착했다. 일을 그만두고 사람들이 떠나고 생각이 날아가버려도, 나는 너의 거역할 수 없는 동반자라는.
고양 아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식사의 의미: 여덟 가지 이야기전>을 관람했다. 여덟명의 작가가 식사를 여러 각도에서 해석했고 그중 스위스 작가 바바라 카뱅의 작품이 특히 인상 깊었다.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마지막 식사’, 즉 최후의 만찬이다. 인간은 자신의 최후를 알지 못하지만 오직 한 집단, 사형수들만이 예외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식사의 원초적 목적이라면 죽음을 앞두고 음식을 먹는 건 확실히 정서적인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사형수들의 마지막 선택은 다소 감상적이다. 한때 웹상에서 화제가 됐던 동영상 <마지막 요청>(The Last Request)에 따르면 사형수들은 유년 시절 즐겨 먹었던 추억의 메뉴나 평생 먹어보지 못한 화려한 만찬, 또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까다로운 레시피를 주문했다고 한다. 어떤 메뉴이건, 그들의 음식에는 마지막으로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리고자 하는 사형수들의 욕망이 담겨 있다.
바바라 카뱅은 사형집행 여덟 시간 전 사형수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 마지막 식사의 주문서를 보았고 그 주문서 그대로 만든 열아홉 가지 요리를 촬영했다. 우아한 접시에 놓인 치즈케이크와 딸기주스, 명절에나 볼 법한 푸짐한 정찬, 지극히 서민적인 패스트푸드 식단이 관객 앞에 펼쳐진다. 사진 안으로 손을 뻗어 탐하고 싶게 만드는 이 생생한 그림 속에는 인공적인 죽음에 대한 연민이나 애도는 없다. 다만 세상에는 이렇게 매력적인 음식들이 존재하며, 그 매력을 더이상 누리지 못하게 된 열아홉명이 있노라고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