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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지붕킥>은 1980년대적인 이야기”
김혜리 사진 오계옥 2009-12-08

김병욱 PD 인터뷰

“힘이 부쳐 일일시트콤은 더이상 못하겠다”는 김병욱 PD의 토로를 처음 들은 것은 <순풍산부인과> 때였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2009년 가을에도 그는 여전히 일일시트콤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수면 부족과 자학에 시달리는 초췌한 얼굴도, 쑥스러워하면서도 능수능란한 연출의 손길도 그대로다. 다만 김 PD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당연히 어느 전작보다 마음에 든다고 담담히 확언한다. 40회까지는 초기 구상대로 달려왔지만 촬영 스케줄이 점점 목을 죄어오면서 “권투로 치면 클린치와 홀딩을 하며 허덕이고 있다”고 자평하는 김병욱 PD. 눈을 질끈 감고 그의 귀한 시간을 약탈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을 끝내고 나서 영화판 제작과 미니시리즈 기획이 있었던 걸로 안다. =2007년 7월 <하이킥>을 끝내고 9월부터 30억원 예산의 영화를 준비했다. <하이킥>이 전작에 비해 짧은 9개월 만에 종영했기 때문에 ‘유종의 미’라는 의미가 컸다. 민정과 윤호의 감정이 어떻게 싹텄는지 숨겨진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었는데 서민정씨의 출연이 어려워지면서 접었다. 배우를 바꾸면서까지 만들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미니시리즈는 2부까지 방송사에 대본을 넘겼는데 준비가 늦어지면서 덮었다. 닭고기 회사를 하는 한 중산층 가정이 1, 2차 조류독감, IMF도 훌륭히 극복하고 마침내 친기업 정권이 들어섰다고 환호작약했는데, 심하게 낙관한 나머지 세계적 기업이 되겠다고 확장하다가 어이없이 망하고 난 다음 이야기였다. 심사한 PD들의 반응은 좋았다. 다만 20분짜리 호흡에 길들다보니 70분 내내 달리는 드라마라 “보다 숨차 쓰러지겠다”는 평을 들었다. (웃음)

-연기자의 재결집이 어려워 시즌제 시트콤은 불가능한 현실이다. 마케팅적 효과를 제외하면 굳이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이 ‘하이킥’이라는 제목을 물려받은 이유가 있나. =처음 들었을 때부터 ‘하이킥’이란 단어가 좋았다. 내 작품과 살아온 방식은 킥을 안 날리거나 기껏해야 로킥이었는데, 하이킥이라는 말에는 단박에 어떤 일을 해결하는 느낌이 있어서 강하게 끌렸다. 전혀 다른 작품이 ‘1-1’로 인식되는 점은 억울하지만.

-지금까지 <지붕킥> 시청자의 코멘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말이다. 내 자신도 나이 들면서 눈물이 많아졌다. (식모살이하는 언니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언니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신애의 장래희망’편 내레이션을 쓰면서 눈물이 났다. 나 역시 궁핍에서 안전하고 싶은 욕망으로 일해왔다. 어떤 면에서 ‘장래희망’편에는 우리가 미래에 대해 갖는 세계관의 비극적인 면이 들어 있다.

-식모살이 모티브가 <지붕킥>의 열쇠 같다. 1970, 80년대 문화인데 2009년 드라마에 굳이 등장시켰다. 예전부터 돈이 인간관계와 집단에 미치는 영향은 김병욱 시트콤의 주요 소재긴 했지만 식모살이 설정은 그것을 노골적으로 전면화한다. 가난이 현실에서 갖는 중요성에 비해 코미디의 소재로 충분히 쓰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나. =<웃으면 복이 와요>에 가난한 집 칠남매를 그린 코너가 있었다. 밥 먹자고 하면 항상 밥이 여섯 그릇밖에 없는 슬랩스틱이었다. 그걸 좀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없는 사람들을 희화화하다니 배부른 짓이라는 비난도 있다. 반면 내가 잘못 파악했는지 몰라도, 처음에는 해리를 미워하는 시청자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돈도 없으면서 신애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이 많다는 걸 발견했다. 지금은 누구 편이 많은지 모르겠다. 신애가 분식집에 돈 없어서 잡혀 있는 동안 추가로 순대를 먹는다거나 하는 걸 보며 없는 처지에 주제넘게 뭘 그리 먹느냐고 화를 낸다. 약자에 대한 이지메일 수도 있고 우리 내면의 강퍅함일 수도 있다. 구질구질하게 살면서도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어 하는 근성을 못 참아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지붕킥>은 1980년대적인 이야기다. 80년대는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폭력의 시대였다. 우리는 많이 진보한 줄 알았는데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게 아닌가 싶다. 경제적인 생존 위기를 피부로 느끼는 사람도 많고 문화적으로도 그렇다.

-강원도 산골에서 상경한 두 인물을 오누이나 형제가 아닌 자매로 설정한 까닭은. =돈이 없어 받게 되는 수모는 여자들에게 더 슬프다. 지키고 감춰야 할 게 더 많으니까. 순재네 옷방에서 자매가 사는데 가끔 노크도 없이 식구들이 들어올 때 여자라서 더 슬프다.

-세경, 신애 자매가 화자가 되면서 현대 도시 문화를 완전히 외계에서 온 순진한 눈으로 보는 코미디의 가능성이 있다. =처음에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처럼 신애 눈에 비친 도시를 그리려고 했는데 코미디로서 재미가 충분치가 못해 단절돼버렸다. 변기에 발을 빠뜨린다거나 시식 코너로 가득한 마트를 찬양하는 뮤지컬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만들고 그쳤다.

-세경·준혁·정음·지훈, 네 젊은이 사이의 짝짓기가 시청자 게시판의 최대 화제인데. =비록 시간에 쫓겨 근근이 제작하곤 있지만 로맨스를 밀고 당겨서 얻는 것이 좋은 코미디도, 절실히 다루고 싶은 주제도 아니라면 결국 허무한 거다. 중요한 점은 인물들이 어떤 성장을 하느냐다. 라인이 어떻게 설정되느냐보다 사랑을 통해 무엇을 깨우치느냐가 관건이다. 또 우리가, 사랑하기 전까지는 잘 그리는데 연애에 들어가면 약하다. (웃음) 어떤 두 인물이 함께 있을 때 좋은 느낌이 나는지 화학작용을 보게 될 것이다.

-<하이킥>의 순재네 집에 1, 2층을 잇는 봉이 있다면 <지붕킥>에는 준혁이 방에 뚫린 개구멍이 있다. =처음에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처럼 앞에서 물구나무서면 뒤집어지는 벽을 만들까 했는데, 치마를 입은 배우한테 곤란하기도 하고 부상 위험도 있어서 바꿨다. 구멍은 봉만큼 크게 이용되진 않겠지만 소소한 코미디를 만들어내기는 한다.

-감독의 전작을 포함한 다른 시트콤, 드라마에 비해 카메라 앵글과 움직임이 다양하다. 인물이 움직이며 대사를 하는 컷도 많다. =세트 촬영을 하면 거의 공간을 활용하지 않고 침대나 탁자에 앉아 이야기하는 게 대세인데 스탭들이 처음에는 당황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답답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 작품은 50신을 찍어도 다른 작품 200신 같다고들 말한다.

-억지쓰고 함부로 구는 해리의 행동을 보여주는 게 아이들 교육상 안 좋다는 항의가 홈페이지에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 =1만개의 악플이 달렸다. (웃음) 예전 작품에서도 논란은 많았다. 학교 실명이 나온다거나, 언급되는 돈 액수가 위화감을 조성한다거나. 그런데 PPL만 아니면 가능한 한 현실적이고 싶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노이즈마케팅이든 뭐든 시끄러웠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시트콤은 뭘 하든 묻히기 쉬운데, 소리소문 없이 무난히 끝나긴 싫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시청률은 무난하게 12~13% 나오는데 사람들은 하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건 싫다.

왼쪽부터 이지현 작가, 김은희 작가, 박순태 PD, 이영철 작가, 김병욱 감독, 이소정 작가, 조성희 작가, 오수진 작가.

-<순풍산부인과>부터 모든 작품을 함께했던 송재정 작가가 작가진에서 빠졌다. 어떤 영향이 있나. =송재정 작가가 쓴 <크크섬의 비밀>은 그가 줄곧 하고 싶어 했던 스타일의 작품이다. 그럼에도 나와 일하면서 내게 맞춰준 거다. <지붕킥>의 세계가 가진 청승맞음은 내가 가진 색깔이다. 송재정 작가는 구성의 묘를 살린 형식 게임에 능한 작가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형식을 달리해서 풀어줄 때가 많았다. <지붕킥>에서는 추리물 구조로 파고드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지붕킥>은 소니 자회사를 통해 일본에 전회 수출됐다.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들은 바 있나. =11월부터 방영된다. 뭐, 자기들이 알아서 보지 않겠나. (웃음) 예컨대 시골 가면 벗은 여자 모델이 나온 달력이 걸려 있는데, 디자인한 사람의 의도와 전혀 무관하게 떡 쌀 때 쓰고 그러지 않나. (웃음) 종교의 경전들도 그 많은 손과 종교회의를 거치며 오역과 왜곡이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내가 종교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만들고 나면 어떤 물건이 누구에게 어떻게 소비되느냐는 통제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것 같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김민정의 내레이션으로 <똑바로 살아라>는 서민정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됐다. <지붕킥>이 독백으로 끝난다면 누구의 목소리일까. =신애나 세경이일 것이다. 이 드라마가 완성된 형태를 갖춘다면 시작이 그랬듯 결말도 두 자매의 성장으로 마무리돼야 한다. 순재네 집 식구들도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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