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배를 잡고 웃다 눈물을 찔끔거리고, 하루는 애처로워 눈시울을 붉힌다. 꼬박꼬박 회당 두개의 시추에이션을 완결시키면서도 인물들의 운명에 연연하도록 관심을 붙들어놓는다. 오후 7시45분대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극본 이영철·이소정·조성희, 연출 김병욱·김영기·조찬주)이 우리를 정신 사납게 만들고 있다. 인기도 김병욱 PD의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 못지않다. 일일시청률 (11월5일 TNS미디어 집계)이 20% 고지에 올랐고 광고 판매율도 100%를 웃돈다는 소문이다. 120회로 예정된 시리즈가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이즈음 <씨네21>이 일산 드림센터 제5스튜디오의 ‘지붕 없는’ 순재네 집을 방문했다. 김병욱 시트콤을 꾸준히 지켜보아온 듀나의 글과 PD의 중간소감도 듣는다.
“시트콤이라며~!” “다섯살짜리 딸이 시트콤 보다가 울었어요.” “상식적인 선에서의 시트콤을 원합니다.” “왜 시트콤을 보면서 걱정을 해야 할까요?”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일부 글의 제목은 김병욱 PD의 일곱 번째 작품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이 일으킨 독특한 반향을 보여준다. 분명히 <지붕킥>은 같은 인물이 반복 출연하고 스튜디오 촬영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웃음소리가 효과로 깔리는 시추에이션 코미디다. 또한, 대가족과 그 주변 이웃을 구성원으로 삼는 김병욱 시트콤의 익숙한 구도도 보존하고 있다. 혼돈의 원인은 장르의 암묵적 계약을 넘어서는 정서다. <지붕킥>은, 워낙 인간의 보편적 어리석음과 거기서 비롯되는 페이소스를 기본 재료로 취했던 김병욱 PD의 전작과 나란히 세워놓아도 비죽 튀어나온다. 상황은 훨씬 처절하고 인물들의 행태는 더 절박하거나 병적이며 드라마는 슬픔과 콤플렉스에 한층 예민하게 반응한다. 잠깐. 김병욱 시트콤은 ‘오바’를 해충처럼 질색하는 세계 아니었던가? 김 PD는 진짜 감정을 직면하는 것과 과잉은 다른 사안임을 말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절절한 속내를 드러내면 촌스럽다고 여기는 문화에 길들여져 진심과 괴리된 채 생활하는 데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표현하는 코미디의 형식이 낡지 않았다면 바닥에 깔린 욕구와 정서야 좀 뜨거우면 어떠냐는 생각이 있었어요.”
일례로 6회 에피소드를 보자. 강원도 산골에서 상경한 세경과 신애 자매는 노숙생활을 하다 실수로 서로를 잃어버린다. 세경은 한옥집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넋이 나간 채 동생을 찾아다닌다. 신애 역시 목 놓아 울며 언니를 찾아 헤매는데, 줄곧 오열하는 틈틈이 주택가에 배달된 우유를 훔쳐 마시고, 편의점에 남겨진 컵라면과 단무지를 싹싹 비우고 노숙자 무료 급식의 밥풀까지 떼먹는다. 한편 도와주러 나섰던 정음은 옷가게 쇼윈도에 정신이 팔리고 인나와 광수는 쾌청한 날씨에 홀려 교외로 놀러가버린다. 밤이 이슥하도록 뒤꿈치에 피를 흘리며 뛰어다니던 세경은 환청처럼 동생의 음성이 들리자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귀를 대고 엎드려 운다. 어느 시청자는 “갈 곳 없는 아이가 거리에서 음식 주워 먹는 게 웃기냐?”고 항의했다. 아마 <지붕킥>의 작가와 감독은 웃기기도 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삭막하고 화나고 슬픈 상황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그 모든 감정을 23분 러닝타임 안에 숨차게 포개놓는다.
가난이 코미디와 비극의 원천
<지붕킥>의 차별성은 주로 세경과 신애의 존재에서 나온다. 형식적으로 우선 <지붕킥>은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에서 시작돼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이하 <하이킥>)으로 이어진, 개별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장기적 서사를 적극 밀어붙이고 있다. 세경 자매가 헤어진 아빠를 찾는 과정이 이야기의 척추다. 둘째, 낯선 환경에 던져진 소녀들에게 시점을 부여함으로써 성장드라마 성격이 강해졌다. 한편 이들의 강한 자매애와 독립성은 가족 안에서 거의 감화를 받지 못하는 순재네 아이들- 준혁과 해리- 도 성장시킨다. 셋째, <지붕킥>에서 가난이 초래하는 불편과 거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은 코미디와 비극의 원천이다. 부잣집에 식모로 입주한 세경의 생활이 계급의 대조를 때로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면 명문대생인 척 과외교습을 하면서 카드빚에 쪼들리는 대학생 황정음은 소비를 결코 따라잡지 못하는 상대적 빈곤을 코믹하게 표현한다. 김병욱 PD와 제작진은 <지붕킥>에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부러 정의롭게 묘사하거나 픽션을 빌려 사과하지 않는다. 그냥 가난을 얼굴 앞에 확 들이밀고 돈 때문에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없는 세세한 상황에서 코미디와 멜로를 만들어낸다. “60분짜리 서사에는 흘러가야 할 큰 방향이 있어서 이런 작은 이야기들을 끼워넣기 힘들어요. 어찌보면 25분짜리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라 곧 장르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제게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해요.” 오랫동안 영화나 정극 드라마를 향해 갈증을 품었던 김병욱 PD는 이제 25분짜리 서사의 고유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제가 하고 싶은 드라마를 할 뿐 그것이 어떤 형태로 규정되는지는 관심이 없고요. 웃음 효과도 방송사와 약속이라 조연출이 까는 거지, 전 빼도 상관이 없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채널이 고장난 것도 아닌데(웃음) 다른 걸 보면 되지 않을까요?”
컷의 리듬대로 악보 연주하듯 촬영
“뭐 제가 사갈 것은 없을까요?” 취재 전날 인사 문자를 보내자 김병욱 PD의 시름시름한 답신이 날아왔다. “시간을 좀 사다주세요.” 어느 일일극 연출자든 치러야 할 싸움이겠으나, 김병욱 PD가 더욱 고된 까닭은 그가 세 작가와 더불어 대본 작업에도 직접 매달리기 때문이다. 자기 이야기를 연출하려는 고집이냐 물었더니 다른 방법은 아예 모른단다. “대본을 쓰면서 콘티를 떠올리는 방식이 몸에 배어 제 손이 닿지 않은 대본으로는 콘티를 못 짜요.” 김병욱 PD가 직접 연출하는 <지붕킥>의 세트 촬영은 매주 목·금요일 이틀 동안 밤을 새우며 이루어진다(야외장면은 김영기, 조찬주 감독이 맡는다). 세트에서 소화하는 분량은 일주일 방송분의 절반인 100여신. 목요일은 순재네 집, 금요일은 자옥·정음·줄리엔·광수·인나가 사는 한옥 세트를 중심으로 녹화가 이뤄진다. 11월12일 목요일 오전 11시. 리허설을 위해 모여든 제작진과 배우들이 이 방 저 방 우르르 뛰다시피 몰려다니며 연기의 톤과 동선을 체크한다. 격려차 방문한 엄기영 MBC 사장과 일행을 제대로 응대할 경황도 없다. 아직 분장하지 않은 배우들의 분위기는 캐릭터와 사뭇 다르다. 신세경은 힐을 또각이며 들어섰고 지훈 역의 최다니엘 얼굴에는 뿔테 안경이 없다. 극중에서 퉁명스러운 말투의 소년 준혁인 윤시윤은 주변이 동그랗게 환해지는 웃음을 뿌리며 ‘빼빼로’를 돌리고 있다. 원체 상냥하고 웃음 많은 성격을 쿨한 준혁에게 맞춰 억누르느라 수고가 많다.
김병욱 PD가 직접 연출하는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트 촬영은 매주 목·금요일 이틀 동안 밤을 새우며 이루어진다(야외장면은 김영기, 조찬구 PD가 맡는다). 세트에서 소화하는 분량은 일주일 방송분의 절반인 100여신. 목요일은 순재네집, 금요일은 한옥 세트를 중심으로 녹화가 이뤄진다.
점심과 음향효과 녹음을 마친 오후 3시, 촬영이 개시됐다. 세트와 부조정실의 모든 스탭은 카메라 앵글과 연기자의 동선이 컷별로 표기된 ‘악보’- 콘티 대본에 따라 움직인다. 세대의 카메라에서 잡은 영상은 촬영과 동시에 악보에 지정된 대로 편집된다. 숏이 아니라, 세 카메라를 한번 배치해 찍어낼 수 있는 한달음의 연기가 구성의 기본단위다. 컷의 리듬대로 손가락을 튕기는 김병욱 PD는 무슨 노래를 연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트에서는 현경이 해리의 두 다리를 붙들고 상체 강화 훈련을 시키고 있다. 매사에 급우 신애보다 처지는 딸에게 부아가 치민 체육교사 현경이, 달리기만은 질 수 없다는 결단으로 특훈에 돌입한 것이다. 해리가 팔로 계단을 오르는 장면을 어떻게 하면 더 역동적으로 잡을지 촬영감독과 부조정실 사이에 몇 차례 논의가 오가다 부감으로 결정을 본다. 록키 발보아가 울고 갈 훈련을 거친 해리가 드디어 실력을 발휘해 신애를 뒤쫓는 장면. 곁눈질해본 대본의 지문에는 무려 “영화 <추격자>의 김윤석과 하정우처럼”이라고 써 있다. 두 소녀의 레이스를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던 현경은 해리가 마침내 신애를 붙잡자 승리의 어퍼컷을 날린다. 표출되는 기쁨의 크기를 김병욱 PD가 꼼꼼히 주문한다. “체육인으로서 훈련이 성공했다는 보람이지, 딸이 신애를 때리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하이킥>부터 팀을 이뤄온 김태홍 조명감독은 배우를 대하는 김병욱 PD의 기술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중견 연기자에겐 강한 캐릭터를 심어주고, 신인 연기자에겐 연기력과 캐릭터를 동시에 주입하고, 연기자 캐스팅에 100% 관여하여 비교우위에서 일을 진행한다.”
<지붕킥>의 순재네는 지금까지 김병욱 시트콤의 어떤 가족보다 데면데면하다. 가장 순재는 연애에 몰두해 식구들의 생활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다. 부부간의 대화는 주로 면박, 부모자식간의 대화는 꾸중과 변명이다. 먹이사슬의 최종 고리는 장인회사에서 허수아비 부사장으로 일하는 보석. 그는 자기 의지대로 무엇을 결정한 기억이 아득한 식물 같은 남자다. 53회는 보석의 비애를 아들 준혁의 눈으로 조명하는 에피소드다. 오늘도 순재와 보석의 주된 스킨십은 발길질. 모욕당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준혁의 표정 연기를 PD가 지시한다. “너무 짠한 티를 내지마.” 대선배 정보석이 팁을 일러준다. “속으로만 아픈 마음을 갖고 표정없이 봐.”
빵꾸똥꾸를 빵꾸똥꾸라 부르지 못하는 고통
무뚝뚝한 준혁이지만 세경 누나를 마주 볼 때만큼은 동요한다. 깊은 밤 사골을 고며 식탁에서 혼자 공부하는 세경과 차를 마시는 장면. 기쁜 빛이 만면에 완연하자 PD가 다시 제어한다. “준혁이 조금만 웃음을 줄이자. 넌 딱 그만큼 웃을 때가 멋있어.” 세경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오붓한 즐거움에 막 젖어드는 준혁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엄마가 35점짜리 성적표를 세경에게 보여준 것. 이번에는 상반된 주문이 떨어진다. “바로 전 컷이 좋아하는 사람 손에 들린 35점짜리 성적표야. 네가 이 클로즈업에서 제대로 분노해야 다음 장면들이 살아.” 허공에 걸려 있는 감정을 표현하느라 힘든 또 한명의 연기자는 지훈 역의 최다니엘이다. 세경은 그를 향해 막 싹트는 마음을 잘라버리려고 일부러 덤덤히 등을 돌린다. 친절을 거절당한 지훈은 그녀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오전 리허설에서도 김병욱 PD에게 가이드를 구했던 최다니엘이 말한다. “제3자가 보기에는 분명해 보여도 당사자는 막상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이 있잖아요. 아직 모호해요. 아마 한쪽(정음)은 재미있고 한쪽(세경)은 연민에 가까운 감정이겠죠.”
52회, 53회는 꼬마 악녀 해리의 어휘 절반을 차지하는 ‘빵꾸똥꾸’의 기원과 그 적용사례를 파고든다. 보석이 상품을 걸고 내린 빵꾸똥꾸 금지령. 입에 붙어버렸는지 “빵…”까지 하고 입을 다물어야 하는 대목에서 해리가 그만 “빵꾸똥꾸!”를 내처 외쳐버리자 스탭들이 웃음짓는다. ‘빵꾸똥꾸를 빵꾸똥꾸라 부르지 못하는 고통’이 참으로 눈물겹다. 이 어린 배우는 방영 초기 미운 캐릭터로 미움을 샀으나, 카리스마의 경지까지 연기를 폭발시켜 짧은 시간에 시청자의 적대감을 경외로 바꿔놓았다. “오디션 100:1 뚫을 때만 해도 덜했는데. 이 정도일 줄 몰랐어요. 하나의 연기에 7, 8가지 안이 준비돼 있어요.” 스탭의 존경어린 평이 무색하게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해리는 무섭게 구박하던 신애와 사이좋게 어울려 세경의 목을 끌어안고 텔레토비 노래를 흥얼거린다.
자정이 다가온 세트에는 피로감이 안개처럼 서렸다. 순재네 거실과 마주보고 있는 자옥의 방과 불 꺼진 한옥 마당, 식당과 연해 있는 이순재 F&B 사무실. TV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배치된 세트들을 다시 둘러보았다. 세경 자매가 기거하는 옷방에서는 무릎까지 이불을 덮은 최다니엘이 대본을 옆에 둔 채 건공중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 몇달이 흐른 뒤 시리즈가 끝나면 이 방들은 허물어질 것이다. 여기서 복닥거리던 사람들- 캐릭터, 배우, 스탭 모두- 은 자기 몫의 성장과 상처를 챙겨들고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안온하게 밀봉된 시트콤의 명랑한 우주를 창조하면서도 종장에 이르면 죽음의 예감과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섭리를 외면하지 않았던 김병욱 PD는, 이번에는 어떻게 이 공간에 안녕을 고할까.